김굉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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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그는 [[1492년]] 스승이 죽자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서실을 열고 [[성리학]]을 연구하며 제자를 길러냈다. 그는 [[정몽주]]-[[길재]]-[[김숙자 (1389년)|김숙자]]-[[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을 널리 확산시켰다.
 
수많은 양반 관료들과 중인들, 양인 자제들까지도 그의 문하에 찾아왔고, 그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문하생을 받아들였다. 재물 욕심이 없던 그는 일부 뜻있는 지인들과 제자들이 일부 수업료를 냈을 뿐, 수업료 역시 받지 않았다. 그의 문하에서는 모재 [[김안국]]과 [[김정국]] 형제, [[주계정]] [[이심원]], [[이연경]], [[이약수]](李若水), 문서귀(文瑞龜), 안우(安瑀) 등의 제자들이 이름이 알려졌다.
 
=== 관료생활과 무오사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