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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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전해들은 원소는 불같이 진노해 황급히 사병 백 명을 이끌고 수도를 장악하기 위해 [[장양 (후한)|장양]] 내각에서 임명한 친 환관파 관료들을 공격해 살해했으며 [[하진]]의 사망으로 인한 병사와 관료들의 혼란을 강경하게 수습했다. 또한 수습한 병사들을 이끌고 황궁을 공격하여 전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황궁을 점령했으며 붙잡은 환관들을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이때 얼굴에 수염이 없거나 어깨가 넓거나 목소리가 가늘거나 피부가 희고 곱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희생된 환관들을 포함해 죽은 환관은 2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십상시의 난]])
 
하지만 원소는 정권을 잡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혼란을 틈타 [[동탁]]이 낙양에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와서 황제를 확보하고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당시 황제였던 [[후한 소제 (13대)|소제]](少帝)는 하태후라는 후견인이 존재하였으며 이미 나이가 많아 [[동탁]]이 권력을 휘두르는 데 방해가 되었으므로 [[동탁]]은 황제의 폐위를 획책하였는데 이로 인해 원소는 [[동탁]]과 심하게 반목하였다. 후한서에 의하면 이때 원소는 폐제를폐위를 획책하는 [[동탁]]을 준엄하게 꾸짖었으나 [[동탁]]은 칼을 어루만지며 "내가 하고자 하는데 안 되는 게 무엇이냐. 감히 애송이 녀석이 내가 하는 일을 막고자 하는가!"라고 말하며 원소를 협박하였다. 이에 원소가 "천하에 힘있는 자가 어찌 동공 뿐이겠습니까!"라고 분연히 말하며 칼을 뽑아든 채로 인사하고 나가버려<ref>〈원소전〉“〈《獻帝春秋》曰:[...] 卓謂紹曰:「豎子!天下事豈不決我?我今為之,誰敢不從?爾謂董卓刀為不利乎!」紹曰:「天下健者,豈唯董公?」引佩刀橫揖而出。”</ref> 좌중을 놀라게 하였다. 곧바로 원소는 인수(印綬)를 낙양의 성문에 걸어놓고는 그대로 낙양을 떠나 발해(渤海)로 갔다. [[동탁]]은 본래 원소를 죽이려 하였으나, 조정에 원소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자 마침내 회유책을 써서 원소를 발해태수(勃海太守)로 임명하였다.<ref>〈원소전〉 [...] 卓以為然,乃拜紹勃海太守,封邟鄉侯。</ref> 동탁은 하태후를 죽개했다.([[189년]] [[9월 30일]]/[[음력 9월 3일]])<ref>《[[후한서]]》 〈[[:s:zh:後漢書/卷9|제9권]]〉 “丙子,董卓殺皇太后何氏。”</ref>
 
=== 반동탁연합의 맹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