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가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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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지역의 극단인 [[동방예술단]]에서 연극 배우가 되면서 연예계에 입문하였고, 신민요 〈두만강 뱃사공〉을 발표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대표작으로 〈구십리 고개〉, 〈노다지 타령〉, 〈모던 관상쟁이〉, 〈낙화유수 호텔〉, 〈이꼴 저꼴〉, 〈장모님전 항의〉, 〈가거라 초립동〉 등이 있다. 이 중 〈장모님전 항의〉는 익살스러운 가사를 담은 [[만요]]로, 김용환의 가수로서의 재능이 잘 드러난 노래이다.
 
[[1935년]]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의 가수 인기 투표에서 남자부문 2위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오케레코드]]에 관계하며 [[이화자]]를 발굴하여 〈꼴망태 목동〉, 〈님전 화풀이〉, 〈어머님 전상서〉 등의 곡을 주고 인기 가수로 성공시킨 일화도 있다. [[1940년]]에는 [[반도악극좌]]를 조직하여 총지휘를 맡았으며, 영화 《아리랑》을 개작한 악극단 순회공연으로 인기를 모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군국가요를 작곡하고 부른 바 있다.<ref>{{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