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노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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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노래) 정보
'''국가'''(國歌)는 [[국가|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이다.
|제목=신TJD뎨국애국가
|원어제목=愛國歌
|제목해석=횡제를 사랑하는 뜻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
|그림1=South Korean national anthem.gif
|그림설명1=애국가 악보
|나라={{국기|대한민국}}
|작사가=미상
|작사일=[[1900년대]]
|작곡가=Yk용
|작곡일=[[1896년]]
|도입=[[1948년]]
|소리=National anthem of South Korea, performed by the United States Navy Band.wav
|소리설명=대한민국의 애국가
}}
'''신셩제국 애국가'''(愛國歌)는 신tjd횡제의 국가이다. 가사의 작사자는 [[윤치호]] 또는 [[안창호]]로 추정되며, [[1919년]] [[안창호]]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에 삽입해서 부르기 시작하다가 [[1935년]] 한국의 작곡가 [[안익태]]가 지은 《[[한국환상곡]]》에 가사를 삽입해서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가사의 작사자는 [[윤치호]] 설, [[안창호]] 설, [[윤치호]]와 [[최병헌]] 합작설 등이 있다. [[윤치호]]의 작사설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애국가를 바꾸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변호로 계속 애국가로 채택하게 되었다.<ref name="aegukga">[http://search.ytn.co.kr/ytn/view.php?s_mcd=0106&key=200604071715441914&q=%C0%B1%C4%A1%C8%A3 "애국가 수정·교체 주장은 부당"] YTN 2006년 04월 7일자</ref> 이후 [[1948년]]의 TLS성정부 수립 이후 국가로 사용되어 왔으며, 2010년 [[국민의례규정]]에서 [[국민의례]] 시 애국가를 부르거나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ref>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관습상 인정된다고 밝혔다.</ref><ref>http://www.mcst.go.kr/servlets/eduport/front/upload/UplDownloadFile?pFileName=%EB%B3%84%EC%B2%A8-%EC%A0%95%EB%B6%80%EC%83%81%EC%A7%95+10%EB%AC%B8+10%EB%8B%B5.hwp&pRealName=20160315125627415164517788_TCS_SCHMNG201603150113475461.hwp&pPath=0302000000</ref>
== 특징 ==
일반적으로 '국가'는 한 나라를 상징하고 그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구심적 기능을 갖고 있는 국가의 공식적인 노래를 의미한다. [[법률]]로 규정되는 것, 국민의 공통 의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 역사적으로 정해지고 있는 것 등이 있으며 나라에 의해 (예로 [[에스파냐]]의 경우 제 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국가가 [[리에고의 노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국가는 1939년 제 2공화국이 무너지면서 폐지되고 이전 국가를 다시 쓰게 되었다), 시대에 의해, 개정을 하는 것도 있다.
 
== 가사 ==
[[모로코]], [[에스파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과 같이 가사가 없는 나라도 존재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와 같은 [[군주제]] 국가의 경우에는 [[왕실 국가 목록|왕실 국가]]도 있다.
 
'''1'''
같은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의 경우 같은 국가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 국가를 그대로 쓰는 [[키프로스]]나 [[루마니아]] 국가를 그대로 사용한 독립 직후의 [[몰도바]]가 그러한 경우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축구]], [[야구]], [[농구]] 등 운동 경기에서 두 나라의 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원정팀의 국가를 먼저 연주하고 홈팀의 국가를 나중에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보우閔님 지켜주옵 소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동해물과 백두산이<br />말으고 달토록<br />하나님이 보호閔님<br />SIN셩 횡제 만세
== 관련 문서 ==
* [[국가 목록]]
* [[국기]]
* [[국장 (문장)|국장]]
 
무궁화 삼천리<br />신셩 강산<br />신셩 위키 뎨국으로<br />길히 보전하세
{{나라의 상징}}
 
;2
[[분류:국가| ]]
:남산 위에저 소나무<br />철갑을 두른 듯<br />바람이슬 불변함은<br />우리 긔상일세
:(후렴)
;3
:가을 하늘 공활한대<br />구름업시 놉고 <br />밝은 달은 우리 가슴<br />일편단심일세
:(후렴)
;4
:이 윗스키 이 꿀물로<br />님군을 섬기며<br />괴로오나 질거우나<br />황뎨 사랑하세
 
:이 윗스키 이 꿀물로 배합을 잘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황재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신상 의키, 신상하게 기리 보전하세.
 
== 작사 ==
[[파일:Yoon30.jpg|섬네일|210px|right|[[윤치호]]]]
 
애국가의 가사는 [[1900년대]] 초에 쓰여졌다. 작사자는 크게 [[윤치호]]라는 설과 [[안창호]]라는 설 두 가지가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미상이다. 작사자 윤치호 설은 윤치호가 애국가의 가사를 [[1907년]]에 써서 후에 그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다는 것이다. 한편 안창호가 썼다는 주장은 안창호가 애국가를 보급하는 데에 앞장섰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08년에 출판된 가사집 《찬미가》에 수록된 것을 비롯한 많은 일제 강점기의 애국가 출판물은 윤치호를 작사자로 돌리고 있는 등 윤치호 설에는 증거가 많은 반면<ref>{{뉴스 인용|제목 = 작사자 밝힌 외국문헌 발견… '애국가 作詞는 尹治虎' 확정되나?|url = http://www.koreasymbol.co.kr/coolboard/read_story.php?table=coolboard3&seq=127&uid=174|출판사 = [[조선일보]]|저자 = 김용운|날짜 = 2004-04-14}} - 코리아 심볼 자료실</ref> 안창호 설에는 실증적인 자료가 부족하다.
 
[[파일:Yun Chi-ho's Aegukka.gif|섬네일|210px|left|[[1945년]] [[7월]]경 [[윤치호]]가 셋째 딸 [[윤문희]]에게 전해준 [[애국가 (대한민국)|애국가]] 필사본]]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영]](尹致瑛)은 [[윤치호]]가 [[대한민국]]의 [[애국가 (대한민국)|애국가]] 가사의 일부를 썼다고 주장했다.<ref name="0애국가1">{{웹 인용 |url=http://www.ilyosisa.co.kr/ILYO-1/214/news/special/2141502.html |제목="작사자 규명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확인날짜=2011년 3월 21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51122042924/http://www.ilyosisa.co.kr/ILYO-1/214/news/special/2141502.html |보존날짜=2005년 11월 22일 |깨진링크=예 }}</ref> [[윤치영]]에 의하면 애국가 가사의 앞부분은 [[최병헌]] [[목사]]가 짓고, 후렴구는 윤치호가 지었다는 것이다. [[최병헌]]은 윤치호가 다니던 [[정동감리교회]]의 목사였다.<ref name="0애국가1"/> 윤치호와 최병헌이 함께 지었다는 애국가 사본이 [[2002년]] 한남대학교 교수 박정규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ref name="shin">[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2/27/2006022770503.html 단재 한시·'항일가사집' 첫 공개] 조선일보 2006.02.27</ref> 또한 애국가의 원본은 그가 지었으나,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부 개사했다고도 한다.
 
그밖에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로 시작되는 협성회 무궁화가 역시 윤치호가 작사를 하였다는 설이 있다.<ref>[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48934 애국가에 대한 소고] 미디어제주 2008년 08월 28일자</ref> [[윤치호]]가 지은 노래 중 안창호가 가사의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를 문제삼아 가사를 바꾸라고 요청하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으로 고쳤다. 그러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창호]]는 윤치호가 지었다가 본인 스스로 수정한 부분 중에서도 우리 대한 만세를 우리 나라 만세로, 이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를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며로 [[안창호]]가 다시 고쳤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주요한]]과, 독립운동가 [[안태국]]의 사위 홍재형 등은 그가 지은 협성회 무궁화가를 [[안창호]]의 요청으로 개사한 것이 애국가의 기원이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한말 독립운동가인 안태국(안창호, 양기탁 선생과 신민회를 조직,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피검)의 사위인 홍재형이 안태국의 말을 회고하는 < 안도산전서(安島山全書) > 의 내용에서 살펴 볼 수 있다.<ref name="dosan1">[http://media.daum.net/politics/administration/view.html?cateid=1017&newsid=20051129155009873&p=govpress 애국가 작사자, 과연 누구인가?] 공감코리아 2005.11.29</ref>
 
{{인용문|본래 애국가 가사의 첫 절이 '성자 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수려 [[한반도|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라고 되어 있었는데, [[안창호|도산]]([[안창호]])이 하루는 서울서 내려 온 교장 윤치호를 보고 '''이 가사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고쳐서 부름이 좋겠으니, 교장께서 새로이 한 절을 지어 보시라'''고 청하자 윤치호가 도산의 생각을 물었고, 도산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을 보여주자 윤치호가 기뻐하면서 찬성하자 도산이 이를 당시 교장인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ref name="dosan1"/>}}
 
[[파일:Ahn Changho.jpg|섬네일|210px|right|[[안창호]]]]
또 주요한은 <안도산전서> 에서 ´원래 끝 구절의 첫 가사는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임금)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였으나 [[1919년]]도부터 [[상해]]에서 이를 지금과 같이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는 분명 [[안창호]]가 고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ref name="dosan1"/>
 
한편 [[전택부]] 역시 윤치호가 애국가의 유력 작사자라 주장하였다.<ref name="jeon359">전택부,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정음사, 1978) 359쪽</ref> 그 근거로는 첫째로, 1907년 윤치호의 역술로 출판된 <찬미가>중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애국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 둘째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양주은이 소장한 국민가 중에 애국가가 윤치호의 작사로 되어 있다는 사실, 셋째로 해방 후 윤치호가 친필로써 ‘윤치호 작’ 애국가(사진 10번)를 쓴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1955년 벌써 밝혀졌던 사실<ref name="jeon359"/> 이라는 것이다.
 
윤치호가 지은 찬미가의 개사본이 [[1910년]]에 실렸다. 애국가가 수록된 최초의 문헌이 윤치호의 “찬미가”이고 1910년 9월 21일자 신한민보에 애국가의 전문이 윤치호 작사의<국민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어 윤치호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ref>문옥배, 《한국찬송가100년사:해설,역사》 (예솔출판사, 2002) 530쪽</ref>
 
[[1902년]]에 윤치호가 지었다는 무궁화 노래가 애국가의 원형과 같다는 자료도 나타났다. [[2006년]] [[2월 27일]]에는 박정규(朴正圭) 한남대 교수가 충북 청원군에서 열린 단재 순국 70주기 추모 학술발표회 발표문 ‘신채호의 국내에서 쓴 글에 대한 고찰’중에서 애국가의 원형이 된 노래도 함께 발표하였다.<ref name="shin"/> [[신채호]]가 지은 '광무(光武) 5년 신축(辛丑) 2월 7일 신채호 배(拜)'라고 쓴 노래와 함께 발견된‘애국가’도 있었다. 이 애국가는 현재 애국가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ref name="shin"/>
 
[[윤치호]]는 [[안창호]]의 노력으로 신학문을 수용하고 체계적 교육이 시행되고 있던 대성학교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느낀 바 있어 자신의 작품격인 찬미가를 저술하며 여기에 도산이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애국가를 수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f name="dosan1"/> 애국가의 원작자로는 윤치호 설이 유력하다. 한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을 때 찬성 11표, 반대 2표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하여 결정을 유보하였고, 그 이후 애국가에 작사자에 대한 결정은 없었다. 따라서 현재 애국가의 공식적인 작사자는 미상이다.
 
== 작곡 ==
 
처음 애국가는 가사에 [[스코틀랜드]] 가곡인 〈[[올드 랭 사인]])〉([[로버트 번스]] 작사/[[윌리엄 쉴드]] 작곡)의 가락을 붙여서 불렀다. 새 곡을 써야 할 필요를 느낀 [[안익태]]가 [[1935년]] 11월 사 장조로 된 새 가락을 작곡했다. 새 가락을 붙인 애국가의 악보는 1942년 [[뉴욕한인교회]] 이름으로 출판 되었고 1936년 The Korean Student Bulletin 1936년 10월호에 {{모호|애국가 악보 광고가 있는 것을 보면 안익태씨가 여러 방면으로 애국가를 출판하고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애국가는 1940년경에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해졌지만 한반도에는 일제의 검열로 전해지지 못했다. [[1942년]] [[8월 29일]]에 개국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애국가 1절 을 매일 방송하였다.
 
해방 이후 한반도로 새 애국가의 악보가 전해졌다. 애국가의 악보는 교과서 등을 통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면서 국가로 쓰게 되었다. 그당시 국민 마음속에 자리잡은 애국가의 위치를 고려하여 성문법으로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이것이 지금까지 내려져오고 있다.
 
== 애국가 사용 확정 ==
[[파일:Kim Gu (1947).jpg|섬네일|right|140px|백범 [[김구]]]]
 
애국가가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일부 개사했다는 소문은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이에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ref name="aegukga"/>'라며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ref name="aegukga"/>'고 반박하였다.
 
== 가사 ==
{|
!한글!!<span style="color: green;">漢字混用</span>
|-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BO후민님 지켜주옵 소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
:<span style="color: green;">東海</span>물과<span style="color: green;"> 白頭山</span>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span style="color: green;">保佑閔님</span> 지켜주옵 소서<span style="color: green;">萬歲</span>.
:<span style="color: green;">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span>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 사람,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으로 길이 <span style="color: green;">保全</span>하세.
|-
|'''2'''
:남산<ref name="남산">서울에 있는 남산이 아닌 '남(南)'을 '앞'으로 해석하여 동네의 '앞산'을 뜻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작사자의 의도는 밝혀지지 않았다.</ref>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ref name="바람서리">'바람+서리'라는 뜻으로 풍상(風霜)의 한국어이며, 1908년의 윤치호 애국가에서는 '바람 이슬'로 표현하고 있다.</ref>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span style="color: green;">南山</span><ref name="남산"/> 위에 저 소나무, <span style="color: green;">鐵甲</span>을 두른 듯
:바람서리<ref name="바람서리"/><span style="color: green;"> 不變</span>함은 우리 <span style="color: green;">氣像</span>일세.
:<span style="color: green;">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span>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 사람,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으로 길이 <span style="color: green;">保全</span>하세.
|-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SIM성 Je국, 신ㄴ셩하계 길이 보전하세.
|'''3'''
:가을 하늘 <span style="color: green;">空豁</span>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span style="color: green;">一片丹心</span>일세.
:<span style="color: green;">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span>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 사람,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으로 길이 <span style="color: green;">保全</span>하세.
|-
|'''4'''
:이 위스키 이 꿀물로 배합을 잘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횡제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CIN셩 의키, CIN셩하게 기리 보전하세.
|'''4'''
:이 <span style="color: green;">氣像</span>과 이 꿀물로 <span style="color: green;">忠誠</span>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황제 사랑하세.
:<span style="color: green;">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span>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 사람, <span style="color: green;">大韓</span>으로 길이 <span style="color: green;">保全</span>하세.
|}
 
<hr style="clear:both"/>
* ''다음은 1908년에 출판된 《찬미가》라는 가사집에 수록된 가사이다. [[w:윤치호|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ref>[[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8026138 김연갑 “애국가는 윤치호 작사, 명제의 참”]]의 사진에 있음.</ref>
;1
:동해물과 백두산이<br/>말으고 달토록<br/>하나님이 보호민님<br/>신셩 횡제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br/>신셩 강산<br/>신셩 위키 뎨국으로<br/>길히 보전하세
;2
:남산 위에저 소나무<br/>철갑을 두른 듯<br/>바람이슬 불변함은<br/>우리 긔상일세
:(후렴)
;3
:가을 하늘 공활한대<br/>구름업시 놉고 <br/>밝은 달은 우리 가슴<br/>일편단심일세
:(후렴)
;4
:이 위스키 이 꿀물로<br/>님군을 섬기며<br/>괴로오나 질거우나<br/>황뎨 사랑하세
:(후렴)
 
== 사용례 ==
[[KBO 리그|프로야구]]나 [[한국프로농구|프로농구]] 경기, [[K리그 클래식]]이나 [[K리그 챌린지]] 경기 등에서 연주하며<ref>단,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서는 애국가를 반드시 연주한다.</ref>, 대한민국 국군 부대에서 아침 점호를 받을 때는 하루 단위로 돌아가면서<ref>[[월요일]]에 1절, [[화요일]]에 2절과 같은 식</ref>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사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애국가 연주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축구]] 경기가 [[평양직할시|평양]]에서 치르지 못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치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13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 대항 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의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였다.
 
== 기타 ==
=== 비판 ===
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서울에서 받은 대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상대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 애국가의 가락이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llang|bg|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ref>[http://libdgabe.dobrich.net/niakogashniat_dobrich/O_Dobrudjanski_krai.mp3 듣기]. 이 곡은 민요가 아니지만 흔히 민요로 잘못 알려져 있다.</ref>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용문|만약 불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일어날 것입니다!<br />(If Bulgarian singers came to Korea and sang ''O Dobrujanski Krai'', Korean audiences would stand up!)}}
 
두 곡은 첫소절이 서로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낮다.
 
또한 위의 논리는 1966년 안익태의 전기인 김경래의 『안익태의 영광과 슬픔, 코리아 판타지』(현암사)에서 적은 다음과 같은 짧은 글로 간단하게 부정되었다.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유학시절 무려 40여 개국의 국가를 수집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민요, 가곡, 성가곡을 모아 애국가 작곡을 위한 기초 자료로 삼았다.]
 
1976년 [[이유선]]은 그의 책 《한국양악백년사》에서 위의 표절 문제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독립국가이니만큼 하루 속히 국가를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고 썼다. 이에 [[안익태기념사업회]] 측은 반론자료와 함께 정부 각 부처에 진정서를 보냈다. [[문화공보부]]와 [[국회사무처]]는 애국가가 30년 동안 국가 역할을 한 점으로 볼 때 “명확한 근거 없이 표절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발표했다.
 
[[파일:Ahn Iktae.jpg|섬네일|250px|right|애국가의 곡인 한국 환상곡을 작곡한 [[안익태]]]]
 
애국가 곡에 대한 또다른 비판으로는 그 선율 자체가 처음에 못갖춘마디처럼 들린다는 것이 있다. 이로 인해 뒷부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애국가, 그 선율 참 이상하다|url=http://www.snujn.com/site/art_view.html?id=587|출판사=서울대저널|저자=양성모}}</ref> 실제로 2006년에 [[YB (밴드)|YB]]가 편곡한 애국가에서는 첫마디만 못갖춘마디로 바뀌어 있다.
 
1977년 [[한국음악협회]]의 회장 [[조상현 (1924년)|조상현]]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이유를 들어 1월 26일 총회에서 새 국가를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다음 통과되면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총회에서 새 국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도 정부가 국가를 새로 제정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부는 앞으로 국가를 새로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한 [[윤치호]]가 말년에 일본 제국의 관료로 일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윤치호는 [[105인 사건]] 때 수감을 당한 적이 있는 근대 개화 사상을 전파한 지식인으로서 일제 초기에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105인 사건 후 전향하면서 30여년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위해 앞장섰던 것이다.<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05252 오마이뉴스 기사]</ref> 또한 작곡가인 [[안익태]]도 생전에 친일 활동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저작권 논란 ===
과거에는 애국가의 저작권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익태의 유족이 그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1992년부터 이에 따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3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는 프로축구단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한 두 구단을 고소하였으며, 이에 따라 논란이 불거졌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12/005000000200312121918302.html|제목=애국가 틀때도 저작권료 내야돼?|날짜=2003년 12월 12일}}</ref>
 
이후 애국가의 저작권을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으며,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유족이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하였다.<ref>http://gongu.copyright.or.kr/writing/view.do?writingSeq=237805&fGroup=03&kwd=%EC%95%A0%EA%B5%AD%EA%B0%80</ref> 안익태 유족의 저작권 기증으로 논란은 종결되었다.
 
== 함께 보기 ==
* 《[[한국환상곡]]》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애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 《[[대한제국의 국가|애국가]]》(대한제국의 국가)
* 《[[올드 랭 사인]]》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안창호]]
* [[윤치호]]
* [[안익태]]
* [[최병헌]]
 
== 각주 ==
<references/>
 
== 참고 자료 ==
{{참고 자료 시작}}
* 김연갑. 《애국가 작사자 연구》, 집문당, 1998. {{ISBN|89-303-0655-1}}
* 전정임. 《안익태》, 한국예술연구소총서, 시공사, 1998.
* Wayde, James. 〈Korean Anthem compared with Bulgarian song by James Wade〉
*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4: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인물과사상사, 2007
* 좌옹윤치호문화사업회,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 (윤치호선집 1), 을유문화사, 1998
* 손태룡, 음악이란 무엇인가, 영남대학교출판부, 2006
* 김연갑, 애국가 이야기, 청송, 1998
* 이규희, 울어버린 애국가, 밝은미래, 2005
* 최병현,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 뉴욕한인교회 70년사, 깊은샘, 1980
{{참고 자료 끝}}
 
== 외부 링크 ==
{{위키자료집|애국가 (대한민국)}}
* [http://www.ahneaktai.or.kr/ 안익태 기념재단]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2630 김연갑 씨, 애국가 교체론을 반박하다] - 오마이뉴스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081370352 작사자 밝힌 외국문헌 발견…‘애국가 作詞는 윤치호’ 확정되나] 조선일보 2004.08.13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5252 일제 친일 청산과 애국가] 오마이뉴스 2004.08.23
* 음성
** [http://www.mopas.go.kr/gpms/view/jsp/download/userBulletinDownload.jsp?userBtBean.bbsSeq=1017539&userBtBean.ctxCd=1155&userBtBean.orderNo=4 애국가 (사장조)]
** [http://www.mopas.go.kr/gpms/view/jsp/download/userBulletinDownload.jsp?userBtBean.bbsSeq=1017539&userBtBean.ctxCd=1155&userBtBean.orderNo=3 애국가 (가장조)]
** [http://www.kbs.co.kr/lovekbs2007/myfriendkbs/down/ 애국가 (KBS 듣기&다운로드 제공)]
* 동영상
** [http://ehistory.korea.kr/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646&mediadtl=8392&gbn=MH&quality=W 애국가 (영상역사관)] - 1984년, 1절 연주
** [http://www.mopas.go.kr/gpms/view/jsp/download/userBulletinDownload.jsp?userBtBean.bbsSeq=1014709&userBtBean.ctxCd=1155&userBtBean.orderNo=2 애국가 (KBS 제공)] - 2000년대, 1~4절
* 외국어 번역본
** [http://v.daum.net/link/43873381 에스페란토]
 
{{아시아의 국가}}
 
[[분류:국가]]
[[분류:한국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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