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연평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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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였고,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남한의 [[동해항]]을 출발한 [[관광선]]이 [[북한]] [[장전항]]에 도착하여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ref name="동아_2">금강산 관광선 北도착, 《동아일보》, 1998.11.19</ref>
 
그러나, [[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협상이 진행 중이던 [[1998년]] [[6월]]에는 [[동해]] [[북방한계선]] 남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북한의 잠수정]]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발각되었다.<ref name="경향_2">北잠수정 발견서 예인까지 꽁치잡이 선장 "눈앞에 잠수정"긴급타전, 《경향신문》, 1998.6.23</ref>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하여 '잠수정은 잠수정, 햇볕은 햇볕'이라 하며 [[햇볕정책]]과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잠수정 침투]]를 분리하여 대응하려 하였다.<ref name="경향_3">'잠수정은 잠수정, 햇볕은 햇볕' '잠수정 사건'정부 대응, 《경향신문》, 1998.6.27</ref>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는 다수의 [[개인화기]]와 함께 사살된 9명의 [[승조원]]이 발견되었고, [[잠수정]]에는 [[어뢰]]발사기가 2문 장착되어 있었다.<ref name="동아_3">北잠수정 사건 침투서 자살까지 재구성, 《동아일보》, 1998.6.30</ref> 승조원의 시신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ref name="경향_4">잠수정시신 오늘 北송환 정전위 비서장회의 열려, 《경향신문》, 1998.7.3</ref>
 
[[1998년]] [[7월]]에는 [[동해시]] 부근에서 북한 [[간첩|무장간첩]]의 [[시신]]이 침투용 장비와 함께 발견되었다.<ref name="경향_5">北무장간첩 變屍1구 동해시 해안서 발견, 《경향신문》, 1998.7.13</ref>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항의를 표시하였고,<ref name="동아_4">안보리에'北도발'서한 제출, 《동아일보》, 1998.7.18</ref> [[북한]]은 이를 [[남한]]의 날조라고 주장하면서 남측에 [[잠수정]] 사고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였다.<ref name="동아_5">北,간첩사건 되레 사죄 요구, 《동아일보》, 1998.7.1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