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2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 변경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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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활동 ===
[[파일:Sophia Jagiellon, Margravine of Brandenburg-Ansbach.PNG|썸네일|100px|왼쪽|부인 [[폴란드]]의 공주 [[소피아 야기에우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작센)|프리드리히 2세]]의 딸 [[안나]]의 차남으로 [[바이에른]]의 [[안스바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에게는 넷째 아들이었다. 하지만 배다른 형들은 [[요한
프리드리히는 아내 [[폴란드의 소피아 야기에우워]]와의 사이에서 11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둘째
그는 14세기 중엽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문에서 갈라진 몇몇 분가의 시조였다. 자녀가 많았던 프리드리히는 13남 프리드리히와 14남 빌헬름, 15남 요한 알브레히트를 모두 [[가톨릭]] 성직자로 출가시켰다. 이 중 빌헬름과 요한 알베르트는 [[대주교]]를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남 [[카지미르 폰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카지미르]]의 가계는 [[1544년]]에 손자 [[알브레히트 알키비아데스]]가 후손을 낳지 못하고 죽어 단절되고, 둘째 아들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게오르크 경건공]]의 가계는 [[1603년]]에 프리드리히의 손자이자 게오르크의 아들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역시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어 후계가 단절되었다. 여섯째 아들 [[요한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는 군인으로 활약했지만 자녀 없이 사망했다. 다섯째 아들인 [[튜튼 기사단]]장이자 첫 [[프로이센]]의 공작인 [[알브레히트 폰 프로이센]]은 자기 외삼촌 [[지그문트 1세]]에게서 [[프로이센]]의 영토를 확보했지만, 역시 그 아들인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가 딸만 다섯 명을 낳고, 아들들은 어려서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남자 후손은 17세기 초엽에 모두 전멸되었다. 그 중, 손자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의 딸 세명은 프리드리히의 배다른 형 [[요한
[[1482년]] 봄부터 그 해 가을까지 그는 [[로마 가톨릭]]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1509년]] [[3월]] 프리드리히는 부인 [[소피아 야기에우워]]와 함께 처조카 [[루드비코 2세 (폴란드)|루드비코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1512년]] [[10월 5일]] 부인 [[소피아 야기에우워]]가 사망했다. 이후 프리드리히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다. 아내 소피아 야기에우워가 죽은 뒤 프리드리히는 저녁마다 폭식했는데, 프리드리히는 매일 저녁 1500잔 이상의 와인을 마셨고, 야생 [[오록스]] 소고기 2마리분과 600여 마리의 생선을 먹었다고 한다. 부인 [[소피아 야기에우워]]의 여동생은 [[바바라 야기에우로]]로 [[작센]] [[공작]]인 [[게오르크 수염공]]과 결혼한 바바라의 딸 [[막달레나 폰 작센]]은 프리드리히의 조카손자인 [[요아힘 2세
=== 안스바흐와 쿨름바흐의 통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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