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치 운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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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 비오 9세]]가 [[1869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전까지는 방어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어 큰 진전을 보기 힘들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는 종전의 방어적인 자세에서 [[동방 정교회]] 및 [[개신교]] 교파들을 '형제'라고 관용하는 자세로 변화하였다.
 
정교회의 용서를 바탕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며 본격화된 교회 일치를 위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노력은 공의회가 진행 중이던 [[1964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동방 정교회]]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를 방문함으로써 교회 일치 운동에 진보를 이룩했으며 이듬해 [[12월]]에는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취소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79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사이의 대화위원회를 구성해 신학적 대화에 물꼬가 트이기도 했다.
 
===성공회와 천주교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