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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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년 9월 2일부터 1544년 11월 28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506년 9월 2일부터 이듬해 1507년 8월까지 [[박원종]](朴元宗)이 [[섭정]]하였고 1507년 8월부터 1543년 3월까지 친정하였으며 1543년 3월부터 이듬해 1544년 11월 28일 [[조선 인종|왕세자]]에게 선위(양위)할 때까지 장남 [[조선 인종|왕세자 이호]](훗날 [[조선 인종|인종]])가 [[대리청정]]하였고 선위한 다음날인 1544년 11월 29일 승하하였다.
 
반정으로 집권한 번째 군주였다. 그러나 사적인 욕심이나 원한으로 반정을 일으킨 [[세조 찬위]], [[인조반정]]과는 다른 각도에서 평가되나, 전반에는 공신 세력의 전횡에, 후반에는 외척 세력의 전횡에 휘둘렸다. 하지만, [[김안로]]나 [[조광조]]의 숙청 때 [[중종]]의 모습은 사관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라고 하거나, '이때 양연이 대사헌으로 이 의논(김안로의 처벌)을 먼저 주장한 것은 왕의 밀지(密旨)를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라고 했듯이 단순히 신권에 의해 휘둘린 왕은 아니었다. 재위 중반에 [[조광조]]등의 사림을 일시에 기용하였으나 공훈삭제와 관련한 공신세력들의 반발과 자신의 왕권의 위협에 대해 우려하여 사림 세력들을 기습적으로 숙청한다. 이 후에는 남곤이 정국을 주도하고, 남곤 사후에는 김안로가 주도하지만, [[김안로]]의 지나친 권력쟁투와 횡포로 인해 위협을 느껴 [[조광조]]와 마찬가지로 김안로를 기습적으로 제거한다. 이후에는 외척에게 정사를 맡긴다. 이는 후일 [[대윤]], [[소윤]]간의 정쟁의 원인이 된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