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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유성 근교의 [[계룡산]]은 한양 무악산과 함께 새 왕조의 유력한 도읍지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수도를 정하기 위하여 태조 2년에 임금의 행차를 계룡산으로 행하였고, 2월 7일 유성에 도착한 왕은 온천에서 머물렀다. 왕실에서 온천을 이용한 것은 [[유성온천]]이 처음이었다. 결국 궁궐을 짓는 도중 천도가 무산되었지만, <정감록> 등에서 이씨 왕조가 망하고 계룡산 일대가 새 나라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현대 들어서, 유성 인접지역에 [[정부대전청사]]와 [[정부세종청사]], [[계룡대|3군 본부]] 등이 건립된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 전국의 군현제도를 새롭게 개편하였을 때, [[공주목]]의 임내(任內)였던 [[유성현]]과 [[덕진현]]은 폐현되어 [[공주목]]에 속하게 되었고, [[진잠현]]은 공주목의 영현이 되었다.<ref>전진식, [http://www.cctoda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74217 1천년前 유성 복원 새장 열렸다]{{깨진 링크|url=http://www.cctoda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74217 }}, [[충청투데이]]</ref> 1602년 [[충청도]] [[감영]] 소재지가 충주에서 [[공주목]]으로 이전되면서 충청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성은 오래전부터 [[유성온천]]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백제]]시대 말 신라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친 아들의 약을 찾던 어머니가 백설이 뒤덮인 들판에서 날개 다친 학 한 마리가 눈 녹은 웅덩이 물로 상처 난 날개를 적셔 치료하는 것을 보고 아들의 상처를 그 물에 담그게 하여 말끔히 치료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면|신도안]]으로 가던 중에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조선 태종|태종]]이 왕자이던 1393년 이곳에서 목욕을 한 뒤 군사훈련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가 시작될 무렵에는 임금이 쉬어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13년 일본인들이 들어와 욕조 4개와 특등욕장 2동을 지어 근대적인 온천시설인 만년장을 준공시킨 것을 계기로 오늘날의 유성온천으로 발전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온천욕을 위해 유성에 방문했던 일화 등도 전해지고 있다. 1994년 [[유성온천]]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유흥업소 영업시간 제한이 없어지고 유흥업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15개이던 유성의 목욕탕은 1997년 22개까지 늘었다.<ref>류용규,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31096 대전 재발견 - (23) 유성온천] [[대전일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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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구는 지리적으로 대전광역시 서북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흐르는 [[갑천]]을 경계로 [[서구 (대전광역시)|서구]], [[대덕구]]와 인접한다. 서쪽으로는 [[갑하산]](469m), [[우산봉]](573m), [[빈계산]] 등 [[계룡산]] 산맥을 경계로 [[충청남도]] [[공주시]], 남쪽으로는 [[계룡시]]와 접한다. 북쪽으로는 [[금병산]]과 [[금강]]을 경계로 [[세종특별자치시]], 동북쪽으로 [[충청북도]] [[청주시]]와 접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조선 도읍지로서 최고의 길지는 '유성'과 넓은'태전'이라 하였을 정도로 예로부터 토지가 비옥하고 산수가 수려하여 유성은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충남대학교]], [[한밭대학교]]를 비롯한 교육시설 있고, 라듐 온천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유성 온천으로 유명하다. [[1993년 세계 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국제관광도시, 과학기술도시, 교육문화도시, 군사교육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중심지인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조성되어 있다.<ref>《[http://www.yuseong.go.kr/_prog/gboard/board.php?code=tong_yeonbo&GotoPage=1&no=53443&parentno=53443&code_group=&skey=&sval=&tmpl=&linkid=010905&code_default=&order=&mode=view 2011년 통계연보]{{깨진 링크|url=http://www.yuseong.go.kr/_prog/gboard/board.php?code=tong_yeonbo&GotoPage=1&no=53443&parentno=53443&code_group=&skey=&sval=&tmpl=&linkid=010905&code_default=&order=&mode=view }}》, 지리</ref>
=== 정부세종청사와 유성 ===
[[정부세종청사]] 1단계 이전 공무원 3,809명의 거주지를 조사한 결과 23.8%인 906명이 유성구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세종시 첫마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구이다. 유성구 다음으로 [[서구 (대전광역시)|대전 서구]](167명·4.4%)와 충북 [[청원군]](133명·3.5%)이 뒤를 이었다. 2013년말 세종시로 이전하는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5,601명 중 42.1%가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어 향후 상당수가 세종시와 10분 거리에 인접한 유성구로 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행정도시와 10km 정도 떨어진 유성구 [[노은동|노은 3·4지구]]에는 내년 상반기까지 대규모(3,837가구) 아파트가 완공된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의 유성구 전입이 늘어나자 유성구는 이들에 대한 행정지원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0/23/0200000000AKR20131023072500063.HTML 대전 유성은 세종시 배후도시…이주 공무원 24% 거주], 《연합뉴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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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버스: 유성구 장대동에 [[유성고속터미널]]이 있다. 서울 [[센트럴시티 (건축물)|강남터미널]]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배차된다.
 
유성복합터미널은 [[구암역 (대전)|구암역]]과 인접한 32,693㎡ 부지에 6337억원을 투입해 2021년까지 지하 4층~지상 10층, 연면적 24만4000㎡ 규모로 지어진다. 대형 서점과 영화관, 전자제품 판매장, 오피스텔(798실) 등이 들어선다. 유성복합터미널은 시내버스 및 급행버스시스템의 기점지와 환승주차장, 화물차고지를 포함하도록 계획되어 있다.<ref>원세연,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63230 대전 유성종합터미널 복합환승센터로], [[대전일보]]</ref><ref>[http://council.metro.daejeon.kr/CLRecords/Retrieval/viewer.appendix.php?dir=a5&aFile=11204 대전 유성종합터미널 건립을 위한 대전 도시관리계획(개발제한구역 일부해제) 결정에 따른 의견 청취의 건]{{깨진 링크|url=http://council.metro.daejeon.kr/CLRecords/Retrieval/viewer.appendix.php?dir=a5&aFile=11204 }}, 대전광역시의회 회의록</ref>
 
== 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