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번째 줄:
{{다른 뜻}}
[[파일:SihaiHuayiZongtu.jpg|섬네일|16세기 중국에서 작성된 세계지도. 왜(倭)는 일본국(日本國)의 아래에 표기되어있다.]]
'''왜'''(倭) 또는 '''왜국'''(倭國, 왜나라)은 중국 등지에서 [[일본 열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의 부족국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과거 15세기까지는 단순히 일본 열도의 고대의 부족국가만을 한정지어 정의했으나, 일본이 통일된 후에도 간혹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왜의 어원은 고대 일본어로 "자기자신"이라는 말이다. 670년도에 일본 정식 국호를 '일본'이라고 정하기 전까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일본의 대외적인 명칭이었다.
 
== 한국과의 연관성 ==
=== 백제와의 관계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2-1-27}}
==== 최초의 교류 ====
[[백제]]와 왜는 평소 문물을 교류하고 지냈다. 예를 들어, 백제인인 [[왕인]] 박사는 왜에 [[천자문]]과 기타 유교 경전을 전수했으며, [[수수허리지]]는 일본에 술을 만드는 법을 전파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술자들과 학자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고, 백제는 이를 통해 군사적 이득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제와 왜가 교류 했다는 증거로 무령왕릉의 무령왕 관을 예로 들 수 있다. 무령왕의 관의 재질은 일본의 금송으로 그당시 일본지역에서만 자라던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왜는 [[고교쿠 천황]](사이메이 천황)이 백제를 돕기 위해 3만 대군을 출병시켰으나 [[백강 전투|백강구 전투]]에서 [[신라]]군에 의해 대패하였다. 멸망한 이후의 백제 유민의 상당수는 왜로 유입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364년,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인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366년 3월에는사신을 보내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왕을 통해 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당시 4세기 중반의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왜국이라고 불렸지만, 야마토왕의 권력에 집중돼있는 야마토 왕국이 일본 부족국가들을 이끌고 있던 연맹 국가였다. 야마토 왕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에 사신 시마노스구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왜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구데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색의 채견 1필, 각궁의 화살, 그리고 철정 40매를 선물로 안겨 돌려보냈다. 철정은 철로 돼있으며 화폐처럼 쓸 수가 있었다. 철이 희귀했던 4세기 극동지역에서는 화폐 역할을 할 정도로 귀했다. 이듬해 367년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를 딸려보냈다. 이렇게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군사 교류 ====
야마토 왕조는 1세기(서기 73년)부터 신라를 침공해왔었다. 한반도를 침입하여 신라와 전쟁을 벌인 역사가 300년이나 된 4세기부터 백제는 왜국과 필요시 전략적 파트너로서 군사 동맹을 여러번 맺었다. 300년이나 신라를 공격했던 역사를 가진 왜국 군대는 백제와 왜국의 사이에 있는 신라를 협공하기에 이상적인 군사 파트너였다. 왜군은 391년에 한반도 남부에 침입한다. 왜국군대가 391년에 한반도에 상륙한 뒤로 마한지역을 근거지 삼아 신라,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다. 396년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패배하고 백제 아신왕이 고구려에게 항복한 사건이 있은 뒤, 백제 한성이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백제의 국력이 기울여 전쟁의 주체는 고구려와 왜국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되고, 백제군대보다 왜국군대의 전투가 주류가 된다. 5세기에는 백제군대와 왜국군대가 더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되고 459년,462년,463년에 걸쳐 신라의 3개성을 침략한 적이 있다. 그 뒤로 5세기 후반에는 왜국군대가 신라 영토를 무수히 침략하게 된다.
 
==== 백제가 왜국에 볼모로 보낸 왕족 ====
{| class="wikitable"
|+백제가 왜국에 보낸 왕족
!인명
!출발
!귀국
!신분
|-
|천지
|397
|404
|태자
|-
|곤지
|461
|477(?)
|왕의 동생
|-
|사아군
|505
|
|태자(?)
|-
|혜
|555
|556
|왕자
|-
|아좌
|597
|?
|태자
|-
|풍장(부여풍)
|631
|661
|왕자
|}
 
==== 마지막 교류 ====
[[백제]]와 왜는 평소 문물을 교류하고 지냈다. 예를 들어, 백제인인 [[왕인]] 박사는 왜에 [[천자문]]과 기타 유교 경전을 전수했으며, [[수수허리지]]는 일본에 술을 만드는 법을 전파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술자들과 학자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고, 백제는 이를 통해 군사적 이득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제와 왜가 교류 했다는 증거로 무령왕릉의 무령왕 관을 예로 들 수 있다. 무령왕의 관의 재질은 일본의 금송으로 그당시 일본지역에서만 자라던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왜는 [[고교쿠 천황]](사이메이 천황)이 백제를 돕기 위해 663년에 400척의 선박을 비롯한 3만 대군을 출병시켰으나 [[백강 전투|백강구 전투]]에서 [[신라]]군에당나라 수군에 의해 대패하였다. 멸망한 이후의 백제 유민의 상당수는일부는 왜로 유입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 신라와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