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히토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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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히토시''' ({{llang|ja|今村均}}, [[1886년]] [[6월 28일]] ~ [[1968년]] [[10월 4일]]) 는 [[일본 제국 육군]]의 육군 대장이다.
== 사관학교 시절 ==
처음에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어느 날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마무라는 육군대학에
==태평양 전쟁==
태평양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피복이 부족해 배급이 이뤄지자 일본정부는 자바에서 생산되는 목면의 대량수입을 고려했지만 이마무라는 이 요구를 거절한다. 이것은 목면을 징발하면 현지인들의 장례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죽은 자에게 목면옷을 입히는
그러나 육군 대본영에서는 그를 불충하다하여, [[1942년]] [[3월]], 이마무라는 스기야마 참모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바타비아로 보낸다. 군부는 그에게
그는 제8방면 군사령관으로 뉴브리튼 섬에 위치한 라바울에 취임해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과 회견했다. 이마무라는 사관시절 야마모토와 친교가 있어 서로 간담상조하는 사이였는데,
이마무라 자신도 비행기로 시찰 도중 미군기의 습격을 받지만 다행히 위험에서 벗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평양의 섬들이 미군에게 함락되자 이마무라는 보급이 안되 굶어죽은 과달카날 주둔병사의 비극을 전해듣고 섬에 대량으로 전답을 만들어 손수 밭을 갈아 작물을 수확해 병사들을 먹여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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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군의 공습에 대비, 지하요새를 건설했는데 맥아더의 미군사령부도 이를 공략못하자 이를 우회해 보급로를 차단, 일본군을 아사지경으로 몰아넣으려 했지만 이마무라가 경작한 전답으로 보급이 없어도 물자가 충분했기에 전쟁이 중단될때까지 라바울은 일본군의 소유로 남아있었다.
==전 후==
[[1945년]],
그 후,
사령관
그 후, 이마무라 히토시는 형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
현재, 일본국립도서관 헌정자료과실에 그의 육성이 담긴 정치담화녹음이 남겨져
{{토막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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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제2차 세계 대전의 군인]]
[[분류:미야기 현 출신자]]
[[en:Hitoshi Imamura]]
[[ja:今村均]]
[[id:Hitoshi Im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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