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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은나라|은]](殷) 시대의 [[갑골문자]]로, 이(夷)에 해당하는 갑골문자는 尸(주검 시)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이(夷)의 어원을 '큰 [[활]]을 가진 사람'이라 해석하였으며,<ref>夷, 平也。从大从弓。東方之人也。</ref> '이(夷)'라는 글자가 '대(大)'와 '궁(弓)'이 합쳐서 만들어졌다는 추측이 전통적인 관점이었으나, 갑골문자의 발굴 결과와 다르기 때문에 현재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은 시기 및 그 이전 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에서 등장하는 동이는 주로 [[산둥 성]], [[허베이 성]], [[장쑤 성]]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종족으로, 중국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여러 제왕들을 비롯하여 은나라까지 동이 출신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당시의 동이를 9개의 종족으로 구분하여 구이(九夷)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후한서》〈동이전〉에서는 이들 구이를 견이(畎夷)·우이(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로 구분하고 있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구분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九라는 글자가 단순히 많다는 의미를 가져 구이는 동이의 수많은 종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적절한 용법이다시각일것이다.<ref>김시황,〈구이(九夷)와 동이(東夷)〉,《동방한문학》17, 1999</ref>
 
[[주나라]] 이후 동이는 중국에 정복되고 흡수되기 시작하여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면 산둥반도의 래이(萊夷)나 장시 성의 회이(淮夷) 등의 작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한나라가 건국된 이후 동이는 모두 중국에 흡수되어 소멸되었으며, 이후의 동이는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종족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나라 이후의 동이는 이전의 동이와 문화적·혈연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ref>이성규, 〈선진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 《한국고대사논총》1, 1991</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