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센이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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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킬러인 동시에 ‘한신 킬러’로서도 활약했는데 요미우리와의 전적을 웃도는 통산 36승을 한신을 상대로 기록했다. 1973년 10월 20일, 9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한신과 상대하여 완투승을 따냈다. 그러나 호시노는 한신과 우승 쟁탈전을 벌이고 있던 요미우리에게 우승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생각에 이 경기에서 ‘져도 상관없다’, ‘내 공을 때려 달라’하는 마음으로 던졌다. 그러나 한신 타선은 범타를 거듭하던 끝에 결국 패했고 요미우리는 9년 연속 리그 우승(V9)을 달성했다.
 
진기한 플레이로 유명한 ‘[[우노 헤딩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운드에 섰던 투수도 호시노였다(1981년 8월 26일, 대 요미우리전([[고라쿠엔 구장]]), 상대 타자는 [[야마모토 고지 (1951년)|야마모토 고지]])<ref name=sponichi>[http://www.sponichi.co.jp/baseball/special/calender/calender_august/KFullNormal20070806186.html {{lang|ja|【8月26日】1981年(昭56) 宇野勝ヘディング事件 星野仙一が怒ったもう一つの理由}}] {{웨이백|url=http://www.sponichi.co.jp/baseball/special/calender/calender_august/KFullNormal20070806186.html# |date=20120905044658 }} - 스포츠 닛폰, 2007년 8월 26일</ref> [[우노 마사루]]의 실책으로 허용한 득점이었기에 호시노는 커버 범위였던 홈베이스 후방에서 글러브를 내팽개쳤다.<ref name=sponichi/> 그 당시 요미우리는 작년 시즌인 1980년부터 연속 경기 득점 기록을 계속 경신하는 중이었는데 이때 호시노는 후배인 [[고마쓰 다쓰오]]에게 “어느 쪽이 먼저 요미우리한테 완봉을 올릴까”를 놓고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당시 포수였던 [[나카오 다카요시]]의 발언).<ref name=sponichi/>
 
호시노는 TV 방송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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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공용분류-줄}}
* {{언어링크|ja}} [http://www.1001-kinenkan.jp 호시노 센이치 기념관]
* {{언어링크|ja}} [https://web.archive.org/web/20120130030438/http://hoshino-torakai.com/ 호시노 센이치 후원회]
* {{언어링크|ja}} [http://www.hoshinodreams.com 호시노 드림즈 프로젝트]
* {{Japanesebaseball|id=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