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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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원조 조건에 따라 수자원공사,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의 방만 경영으로 전기, 가스, 수도, 철도, 의료 등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가 강제적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일부 국민들의 반발로 인해 IMF는 약 10년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유예 종료일이 다가옴에 따라 재추진하려했으나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인해 또 다시 유예되었고 IMF는 어쩔 수 없이 약 8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다. 유예 기간이 종료되어가는 지금,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 국방사업의 축소지연 ===
1980년대 중반부터 정확히는 1986년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3저 호황이라고 해서 경제 성장과 수출 증가를 거치면서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중산층의 비중이 두터워졌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 경제성장을 하면서 당시 한국경제는 단군 이래 최전성기기라고 할 정도였다정도로 비유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가장 서민들의 생활이 안정됐고 사회발전이 순조로웠고 실업률은 낮고 물가는 낮았다. 경제가 꾸준히 하늘 높이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서민들의 장래에 대한 낙관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게다가높았으며 한국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점으로 1990년대 한국군은 한국의 달라진 경제력에 걸맞고 타 국가의 대응할 수 있을만한 국방력을 건설할 신무기 도입 사업 및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육군은 미국과 협력하여 3세대 전차인 K-1 전차를 1987년부터 실전배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이 되면 3세대 전차를 1000여대 이상을 실전배치하게 되었다. 게다가 K200 장갑차나 K-55 자주포도 양산이 한창 진행중이었고 K-9 자주포, K1 전차를 개량한 K1A1 전차 등은 개발 중이었다.
그 결과 당시 육군은 관통력이 KE기준 450mm 방호력이 KE 480mm으로 추정되는 K-1 전차를 미국 협력하여 1987년부터 실전배치하여 1990년대 초반 ~ 중반 기준으로 관통력 650mm 방호력 KE 700mm으로 추정되는 미국 M1A1HA 전차, 관통력 550mm, 방호력 KE 550 ~ 650mm로 추정되는 일본 90식 전차보다는 열세이지만 소련 해체후 러시아 T-72 계열 등의 전차와 주적인 북한의 전차들보다는 K-1 전차는 무난한 편이였다. 그 결과 육군의 문제는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주변국과의 대응을 고려하면 현대화는 지속되고 있어서 1990년대 후반부터는 K1A1 전차, K2 흑표 전차 등을 개발하고 실전배치했다. 물론 육군보다 가장 현대화가 필요한 것은 공군과 해군으로 원래의 한국군 계획은 이지스함 6척, 1차 FX로 F-15 전투기(정확히는 차기 전투기) 120대 도입으로 마무리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육군보다 이후가장 이지스함현대화가 3척,필요한 1것은 ~공군과 2차해군이었다. FX사업으로그러나 60대를1997년의 도입하고 3차 FX 사업으로 F-35 40대(+추가 도입 옵션 20대)의 결과로 나오게 되면서 FX 사업이 길어지고 또한 조기경보기도 1990년대 도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서 사업이 무기한 유보되었다가, 2002년에 사업이 재개되었고 더 시간이 흘러서 E-737 피스아이가 도입되는 등의외환위기는 각종 국방력 증대 사업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2001년 기사에서는 "육군 AHX 사업과 해군 KDX3KDX-3 등의 사업들은 모두 각 군의 대표적인 숙원사업들로 97년 외환위기로 미뤄졌던 것. 특히 지난해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자칫 시작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강하게 일면서 각 군의 치열한 로비전이 전개됐다."라는 언급을 하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057486 (출처)2001년 기사]
 
공군의 경우에는 현대화 계획으로 1991년에 KFP 사업으로 선정된 F-16 Block 52 면허생산에 이어서 진행될 원래의 한국군 계획은 1990년대 이지스함 6척 건함, 1차 FX로 F-15 전투기(정확히는 차기 전투기) 120대 도입으로 마무리가 될 예정이었고 조기경보기 사업도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지스함 3척, 1 ~ 2차 FX사업으로 60대를 도입하고 3차 FX 사업으로 F-35 40대(+추가 도입 옵션 20대)의 결과로 나오게 되면서 FX 사업이 길어지고 또한 조기경보기도 1990년대 도입에 관심을 보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서 사업이 무기한 유보되었다가, 2002년에 사업이 재개되었고 더 시간이 흘러서 2010년대가 되면서 E-737 피스아이가 도입되었다.
그 결과 IMF 구제금융 요청의 영향으로 지원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2018년을 기준으로 F-15 전투기는 미국이 450대, 일본이 200대, 한국이 59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지스함으로는 미국이 90척(줌왈트급 3척, 알레이버크급 65척, 타이콘데로가급 22척), 일본 8척(공고급 4척, 아타고급 2척, 마야급 2척), 한국 해군은 3척(세종대왕급)만을 운용중이다.
 
해군의 경우에는 1990년대 초에 대한민국은 이미 조선산업 규모에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군함도 나름의 체계를 갖춘 울산급을 건조하는 기술 역량을 지녔다. 그러나 해군은 울산급 등의 기존 체계를 운용했으며 미사일 중심의 선진적인 전투체계, 네트워크 능력은 갖추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원양능력과 동시에 현대적 전투능력을 갖춘 함선 건조 기술을 획득하려는 목표를 세운다. 그것이 KDX-1 계획으로 KDX-1 광개토대왕급 사업은 우리나라의 구축함 사업의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한국 해군의 강화를 꾀하는 시작점으로 1998년에 취역했다. 하지만 KDX-1은 운용 이전에도 대양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있었고, 실제로 림팩훈련 등에서 한계를 느껴 3천 톤급은 대양함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KDX-1 사업은 3척에서 종결하고 운용 경험을 토대로 1996년부터 KDX-2 충무공이순신급 사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IMF 사태로 사업이 위험했지만 2001년 1월부터 건조사업을 시작하고 02년 5월에 초도함을 진수한다. 광개토대왕급의 노하우와 기술을 살려 빠른 시간에 향상된 성능으로 건조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독도함은 2002년 10월 건조 개시, 2005년 7월 12일 진수, 2007년 7월 3일 취역했고 게다가 KDX-3로 2007년에 세종대왕급이 진수되었으며 이후에도 인천급, 대구급 등의 호위함 등을 진수하고 있다.
 
그 결과 IMF 구제금융 요청의 영향으로 지원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2018년을 기준으로 F-15 전투기는 미국이 450대, 일본이 200대, 한국이 59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지스함으로는 미국이 90척(줌왈트급 3척, 알레이버크급 65척, 타이콘데로가급 22척), 일본 8척(공고급 4척, 아타고급 2척, 마야급 2척), 한국 해군은 3척(세종대왕급)만을 운용중이다운용 중이다.
== 참고문헌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제목=IMF 극복과 한국경제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