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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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겪은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결성하였던 기구였다는 점이 있지만 아쉽게도 이와는 달리 창설 이래 여러 전쟁들이 발발하게 되었고 그 전쟁을 막아내지 못하였던 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1950년 한국전쟁이 있으며 UN이 창설된지 5년 만에 일어난 전쟁이자 미국 정부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에치슨이 에치슨 라인을 발표하여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시키고 1949년 주한 미군의 전투병력을 본국으로 철수한 것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결국 1950년 6월 25일에 한반도에서 남북간 전쟁이 일어나는 비극을 만들었던 점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을 주력으로 창설 이래 다국적 전투파병 16개국과 의료지원 21개국으로 결성된 UN 지원군이 결성되어서 대한민국에 급파되었던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베트남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여기에 중동전쟁과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침공하는 걸프전쟁도 발발하게 되면서 창설 이후 전쟁을 막아내지 못하였던 점도 있다. 다만 전신인 국제연명과는 다르게 나치 독일이나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등 정회원국이 국제연맹을 탈퇴하였던 것에 비하면 이라크는 전쟁을 일으킨 이후에도 UN 정회원 지위를 유지하며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다.
 
4. 대한민국의 UN 가입
 
대한민국은 1949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UN 정회원국으로의 가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을 지원하는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유일하게 반대를 하여 대한민국 정회원 가입이 부결되었고 다시 1955년에 재신청을 하였으나 이 역시 소련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이듬해인 1956년에 미국을 주도로 한 자유진영국 13개국의 의결로 대한민국의 정회원 가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이 역시 소련이 극구로 반대하여 부결되었다. 소련은 북한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적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때도 대한 지원 논의에도 대사가 불참하는 등 일방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성향을 드러내었다. 소련의 반대로 한동안 가입을 보류하였다가 1973년 박정희 정부가 북한의 UN 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희망을 가졌으나 북한의 김일성이 영구 분단을 조장한다며 반대하였고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로 가입하자고 맞섰다. 1975년 남북베트남의 가입을 계기로 다시 대한민국에 대한 가입신청이 논의되었으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부결되어 가입이 죄절되었다. 사유로는 소련과 소련을 등에 업은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쿠바 등의 공산권 국가가 반대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들어서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를 계기로 미국과 소련이 참가하면서 헝가리, 오스트리아, 인도 등이 대한민국의 UN 가입희망을 지지하였고 쿠바, 말리, 르완다 등 공산권 성향 국가들이 반대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 한소 수교가 이뤄지고 한 -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가 이뤄진 것을 계기로 1991년 대한민국의 UN 가입 논의가 시작되어서 그 해 대한민국과 북한의 UN 동시가입이 이뤄졌다.
 
이 같이 어느 나라가 UN 가입을 희망해도 상임이사국 5개국이 반대하면 가입이 좌절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