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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eethoven Hornemann.jpg|섬네일|200 px|1803년의 베토벤]]
 
1796년 베토벤은 1789년 [[모차르트의 연주 여행]]처럼 중부 유럽의 문화 중심지를 순회하였다. 여정에는 리히노브스키 공(그는 모차르트의 연주 여행에도 동행하였다)도 함께하였으며, 베토벤은 [[프라하]],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베를린]]을 방문하였으며, 작곡과 공연 활동으로 환영받았다. 여행 중 그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는데, 리히노브스키 가문의 인맥 덕분에 그는 도시에 오기도 전에 이미 명성이 높았다. 베를린에서는 첼로 소나타(Op.5)를 작곡하여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 애호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임금에 헌정하였다. 이 곡은 첼로와 피아노의 서로 다른 성격을 잘 고려한 작품으로, 비르투오조 첼로와 피아노 파트를 잘 결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ref name="Cooper62_5">[[#Cooper|Cooper (2008)]], pp. 62–65</ref> 임금은 베토벤에게 금화가 가득 든 코담뱃갑을 주었는데, 베토벤은 연주 여행으로 "많은 돈"을 벌었음을 알았다.<ref name="Cooper68">[[#Cooper|Cooper (2008)]], p. 68</ref> 1796년 7월 베토벤은 빈으로 돌아왔으며, 그해 11월에 다시 여행을 떠났는데, 북쪽이 아닌 동쪽으로 가서 프레스부르크(오늘날 [[브라티슬라바]])와 [[페슈트]]로 갔다. 프레스부르크에서 그는 친구 [[안드레아스 슈트라이허]]가 보낸 피아노로 연주하였는데,<ref name="Cooper69">[[#Cooper|Cooper (2008)]], p. 69</ref> 이를 놓고 그가 농담하기를 "나에게는 너무 좋다... 왜냐하면 이 피아노는 나만의 음색을 낼 자유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a piano he joked was "far too good for me..because it robs me of the freedom to produce my own tone". (번역 검토 필요)-->라고 말하였다.<ref>{{웹 인용|url=http://www.beethoven-haus-bonn.de/sixcms/detail.php?id=5119&template=dokseite_digitales_archiv_en&_eid=5055&_ug=Musicians&_dokid=b88&_mid=Written%20documents%20by%20Ludwig%20van%20Beethoven%20and%20others&_seite=1|제목=Letter to Andreas Streicher in Vienna, Preßburg|성=Beethoven|이름=Ludwig |날짜=19 November 1796|출판사=Beethoven-Haus Bonn Digital Archives|언어=독일어|확인날짜=2009-06-28}}{{깨진 링크|url=http://www.beethoven-haus-bonn.de/sixcms/detail.php?id=5119&template=dokseite_digitales_archiv_en&_eid=5055&_ug=Musicians&_dokid=b88&_mid=Written%20documents%20by%20Ludwig%20van%20Beethoven%20and%20others&_seite=1 }}</ref>
 
베토벤은 1797년에 거의 빈에서 체재하였는데, 그에게는 여름과 가을마다 심각한 질병(아마 [[티푸스]])에 시달렸으나, 작곡(작곡 부탁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과 연주를 계속하였다. 이 시기에(1795년일 수도 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ref name="Cooper72">[[#Cooper|Cooper (2008)]], p. 72</ref> 1798년 다시 프라하로 여행할 때, 청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결국 연주 여행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ref name="Cooper75_6">[[#Cooper|Cooper (2008)]], pp. 75–76</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