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 (137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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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 영의정 경재 하연 공 영정
|출생일= [[1376년]]
|
|직책 = [[의정부]] [[영의정]] |출생지= [[고려]] [[진주시|경상도 진주]] 여사촌
|사망일= [[1453년]]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임기 = [[1449년]] [[10월 5일]] ~ [[1451년]] [[7월 13일]]
|후임=[[황보인|황보 인]]
|본관= [[
|별명= 자(字)는 연량(淵亮)<br/>호(號)는 경재(敬齋)
|학력= 1396년 식년문과 급제
|군주 = [[조선 세종|세종 이도]]<br/> [[조선 문종|문종 이향]]
|경력 =
|종교=[[유교]]([[성리학]])
|배우자= [[성산 이씨]]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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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하연'''(河演, [[1376년]] ~ [[1453년]])은 [[조선]] 초기의 [[문신 (관료)|문신]]이다. 본관은 [[
[[139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다.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거쳐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궤장(几杖)을 받았다. [[우의정]]·[[좌의정]]을 지내고, [[1449년]]에 [[황희]]를 이어 [[영의정]]에 올랐다. 하연은 의정부에 들어간 이후, 약 20여 년 동안 원칙에 어긋남이 없이 공사간 법을 잘 지켜 조선왕조 500년의 역대 재상 중에서 유일하게도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청렴과 결백의 표상'이 된 인물이다. 1451년(문종 1)에 [[조선 문종]]이 대자암을 중수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뒤, 벼슬에서 물러나고 [[1453년]] 타계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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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376년 태어남]]
[[분류:1453년 죽음]]
[[분류:
[[분류:유교 신자]]
[[분류: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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