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경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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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경종'''(
== 생애 ==
경종은 [[려 세종|세종]]의 둘째 아들이다.
레 경종은 [[레 세종]]의 둘째 아들이다. 1599년에 레 세종이 죽었는데, 권신 [[정송]]이 레 세종의 장남인 려유지(黎維持)가 총명하지 못함을 이유로 11세의 려유신을 황제로 옹립하였다.<ref>《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권30·려세종광흥22년(黎世宗光興二十二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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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동안 정송이 조정의 정사를 장악하였다. 정송은 자신의 딸인 정씨옥정(鄭氏玉楨)을 레 경종의 황후로 맞게 하였고, 둘 사이에서 [[레 신종]]이 태어났다. 려 경종은 정송의 전권 행위에 대단히 불만을 품었다.但黎▼
▲재위 동안 정송이 조정의 정사를 장악하였다. 정송은 자신의 딸인 정씨옥정(鄭氏玉楨)을
1619년에 레 경종은 정송의 아들인 정춘(鄭椿)과 모의하여 정송이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를 죽이고 황권을 회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암살자가 실수로 의자에 있는 상을 맞추었고, 정송은 그를 암살자를 잡아 고문하여 레 경종과 정춘의 음모를 알게 되었다. 정송은 레 경종을 협박하여 스스로 목을 매고 죽게 하였고, 경종의 장남인 [[레 신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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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의 기록에 따르면 레 경종이 정송을 암살하려 했기 때문에 정송은 려 경종에게 묘호를 주는 것을 거부하였고, 단지 시호를 간휘제(簡輝帝)라고 하였다. 아울러 경종의 영위(靈位)에 대한 제사를 태묘(太廟)에서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1632년에 이르러 려 신종이 자신의 생부라는 연고를 내세우자 권신 [[정장]]이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에 동의하였고, 마침내 묘호를 경종(敬宗), 시호를 현인유경수복혜황제(顯仁裕慶綏福惠皇帝)라고 하였다.▼
▲《흠정월사통감강목(欽定越史通鑑綱目)》의 기록에 따르면
== 각주 ==
<references />
{{전임후임
|앞이름=전 임
|뒤이름=후 임
|전임자=[[려 세종|세종 려유담]]
|직책 = [[대월]] [[후려조]]의 황제
|대수= 15
|임기= [[1556년]] ~ [[1573년]]
|후임자=[[려 신종|신종 려유기]]
|}}
{{후려조의 황제}}
[[분류:1588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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