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랄산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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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초 폴란드 지리학자 [[마치예즈 미에호비타]](Maciej Miechowita)가 저술한 《두 [[사르마티아인]]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duabus Sarmatiis'', 1517)에는 유럽 동부의 산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유럽 동부의 지리에 대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기스문트 폰 헤르베르스타인이 《[[모스코바 대공국|모스코비]]의 강역에 대한 기록》(''Rerum Moscoviticarum Commentarii'', 1549)을 저술한 이후이다.
 
155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 차르국]]의 [[이반 4세]]가 [[카잔 칸국]]을 멸망시킨 후 러시아는 우랄산맥 남부를 자신의 영토로 삼게 되었다.<ref>비비안 그린, 채은진 역, 《권력과 광기》, 말글빛냄, 2005년, {{isbn|978-89-9559-883-2}}</ref> 1574년 이반 4세는 [[우파 (도시)|우파]]에 요새를 세웠다.<ref>[http://www.russia-ic.com/regions/2895/2896/history/ History of Ufa]</ref> 이후 러시아는 1598년에 [[시비리 칸국]]을 멸망시키고, 1648년에는 [[쿤구르]]에 요새를 건설하는 등 우랄산맥에 대한 지배권을지배력을 강화하였다.
 
17세기에 들어 우랄산맥에는 철, 구리, 운모, 보석 원광 등을 채굴하는 광산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제국]]을 선포한 [[표트르 1세]]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우랄산맥은 러시아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표적인 광산 지역이 되었다.<ref>김경묵, 《이야기 러시아사》, 청아출판사, 2004년, ISBN 978-89-36-80361-8, 172쪽</ref> 19세기는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몰려가는 "[[골드 러시|황금광 시대]]"였고 러시아에도 황금 열풍이 불었다. [[알렉산드르 1세]]가 금광을 개발한 이래 1823년에 2톤이 채 되지 않던 우랄산맥의 금생산량은 1830년 5톤, 1842년 11톤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1847년 무렵에는 전세계 금 생산의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랄산맥 금광의 대대적인 성공은 이후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큰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ref>피터 L. 번스타인, 김승욱 역, 《황금의 지배》, 경영정신, 2001년, {{isbn|89-7288-151-1}}, 33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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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
{{아시아의 주요 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