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르 하우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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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레오나드는 하이덴라이히와 헤세 양 쪽의 의견을 모두 기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카스파르 하우저는 이미 다른 작가들이 의견을 밝혔듯이 병적인 사기꾼이다. 덧붙여서 그의 [[연극성 인격장애]]는 그가 매우 냉정하게 자신의 역할극을 잘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아마도 피해망상적인 고집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습관에 대한 많은 보고서들에서 [[히스테리]] 증세에 더하여 그의 [[편집증]]적 경향을 알아차릴 수 있다."<ref name="Karl Leonhard 1970, p.&nbsp;229"/>
 
1928년 의학 연구는<ref>Erwin Bruglocher: ''Über Kaspar Hausers Todesart. Ärztliche Studie.'' Ansbach, Brügel 1928</ref> 하우저가 실수로 자신을 깊숙이 찔렀다는 견해를 뒷받침했지만 반면, 2005년 법의학 조사에서는 "가슴을 찌른 것이 오로지 자해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자해와 살해(암살) 둘 다 배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ref>{{cite저널 journal인용|journal= Archiv für Kriminologie|date= Jul–Aug 2005|volume= 216|issue= 1–2|pages= 43–53|title= The death of Kaspar Hauser (17 Dec 1833)--assassination, suicide or self-inflicted injury?|language= German|authors= Risse M, Bartsch C, Dreyer T, Weiler G|issn= 0003-9225|publisher= Verlag Schmidt-Romhild|PMID= 16134400}}</ref>
 
== 하우저는 바덴 대공 가문의 왕자이다. ==
[[File파일:Luise-Karoline-von-Hochberg.jpg|thumb섬네일|left|upright|호흐베르크(Hochberg) 백작 부인]]
[[File파일:StephanieB.jpg|thumb섬네일|right|upright|스테파니 대공 부인]]
 
아마 가장 빠르면 1829년 쯤부터 퍼지기 시작한 소문에 따르면 카스파르 하우저는 1812년 9월 29일에 태어났으나 1812년 10월 16일에 죽었다고 알려진 바덴 대공 가문의 [[왕자]]라는 것이다. 그 왕자는 당시에 죽어가는 아이와 바꿔치기 되었으며 이후 16년이 지나 카스파르 하우저란 이름으로 뉘른베르크에 등장했다는 게 소문의 내용이다. 이 경우라면 카스파르 하우저의 부모는 카를르스 루트비히 프리드리히(Charles Ludwig Friedrich) 바덴 대공과, 결혼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딸을 입양한 것에 의해 친척이 된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카를르스 대공에겐 살아남은 남성 자손이 없었으므로 그의 삼촌 루이스가 대공의 즉위를 승습받았고 그 이후엔 이복형제인 레오폴트가 승습받았기 때문이다. 레오폴트 대공의 어머니 호흐베르크(Hochberg) 백작 부인이 소년을 감금한 범인이란 혐의를 받고 있다. 백작 부인이 왕자를 납치할 때 스스로를 "흰색 숙녀"란 유령으로 위장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녀의 동기는 분명히 자신의 아들이 안전하게 대공 작위를 승계받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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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게 나온 DNA 분석 결과 ===
1996년 11월, 독일의 일간지 [[슈피겔]]은 하우저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속옷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을 유전적으로 대조하는 시도를 보도했다. 이 분석은 버밍엄의 법과학 서비스 실험실과 [[뮌헨대학교]]의 법의학 연구소 주관으로 실시되었다. 대공 가의 후손들과의 혈액 샘플 대조 결과 카스파르 하우저가 바덴 대공 가문의 왕자의 혈통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ref>''Der Spiegel 48'' (25 November 1996), pp.&nbsp;254–273.</ref><ref>{{cite저널 journal인용|vauthors=Weichhold GM, Bark JE, Korte W, Eisenmenger W, Sullivan KM |title= DNA analysis in the case of Kaspar Hauser|journal= International Journal of Legal Medicine|year= 1998|volume= 111|issue= 6|pages= 287–91|publisher= Springer|issn= 0937-9827|PMID= 9826086|url= http://www.springerlink.com/content/b1ud312e2jqkelnu/|doi=10.1007/s004140050173}}</ref>
 
2002년, [[뮌스터 대학교]]의 법의학 연구소는 카스파르 하우저의 머리 타래와 입고 있던 의류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세포와 체세포를 분석했다. 분석가들은 품목에서 채취한 6개의 다른 샘플을 실험했고 모두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1996년에 있었던 혈액 샘플 대조 결과와는 상당히 차이를 보여 진위 여부가 의문스러웠다. 새로운 DNA 샘플은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 대공 부인의 모계 후손인 아스트리드 폰 메딩거(Astrid von Medinger)에게서 채취한 DNA 조각과 대조되었다.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편차는 [[돌연변이]]에 의한 차이와 같이 관계를 배제할 만큼 충분히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ref group="주">시험에 사용된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 혈통으로만 전달되므로 돌연변이 없이는 바뀔 수 없다.</ref> 다른 한편으로는 하우저의 샘플은 [[독일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유사성이 대공 가문과의 관계를 입증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ref>Bernd Brinkmann, ''Neuester Stand der Forschung der Gerichtsmedizin und Pathologie der Universität Münster''. Preface to: Anselm von Feuerbach, ''Kaspar Hauser'', Reprint-Verlag Leipzig 2006</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