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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간 평화로이 지내다가 [[16세기]]에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재정이 바닥났으며,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서인]]이 [[인조반정]]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렸는데, 그로써 권력을 쥔 [[인조]]는 친명배금을 표방하다가 [[병자호란]]으로 탈탈 털린다. 이 양난을 기점으로 [[유교|유학]]의 영향력이 공고해지고, 조선의 역사는 후기로 접어든다.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 조정에서는 청나라에게 당한 수치를 씻자는 [[북벌론]]과 청나라를 본받자는 [[북학론]]이 대두되었으나 [[조선 효종|효종]]이 [[의료사고]]로 숨지면서 북벌론이 흐지부지되고, 북학론도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로 치부하는 관료들 때문에 국정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이후 권좌에 오른 [[조선 현종|현종]]은 [[경신대기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을 수습하고 황폐화된 조선을 복구하며 서인을 견제하는 데 힘을 썼다. 이즈음, 붕당붕당이 정치는하루아침에 붕당들이흔적도 학문적,없이 정치적으로사라지는 대립함에도 불구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여 스스로 부패하는 것을 경계했던 초기와 달리,'환국'을 [[조선 숙종|숙종]] 때 붕당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환국'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일으키면서, 붕당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한 상호 공존이라는공존 '붕당 정치의부패 원칙'이방지라는 무너지고,원칙은 퇴색되고 정권을 잡을 때마다 다른 붕당을 모조리 축출하는 일당 전제화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궐내의 권력 암투였기에 수 차례 환국을 거치는 동안 백성들은 오히려 태평성대를 누렸다. 숙종이 총애하던 [[장희빈]]의 소생 [[조선 경종|경종]]은 [[소론]]과 [[노론]]의 알력다툼에 지쳐 재위 4년 만에 승하했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임금인 [[영조]]는 당쟁을 혁파하기 위하여 [[탕평책]]을 폈으나 붕당정치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이때를 전후하여 [[천주교]]가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 [[조선 정조|정조]] 역시 [[탕평책]]을 폈을 뿐만아니라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을 발굴하여 [[수원 화성]]을 축성하는 등 개혁 정치를 시도했지만 1800년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정조가 사망하면서 조선의 국운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19세기 [[조선 순조|순조]]·[[조선 헌종|헌종]]·[[조선 철종|철종]] 3대에 걸쳐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의 세도 정치가 60여 년 동안 계속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들 외척가문은 왕위 임명에도 손을 대는 등 부정부패 속에서의 절대권력을 누렸다. 그러던 가운데 흥선군 [[이하응]]이 풍양 조씨의 대표 [[신정왕후 (조선)|조대비]]와 결탁하여 둘째아들 명복을 조선 국왕 자리에 올리는데, 바로 [[조선 고종|고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