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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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간 평화로이 지내다가 [[16세기]]에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재정이 바닥났으며,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친 [[광해군]]은 [[서인]]이 [[인조반정]]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렸는데, 그로써 권력을 쥔 [[인조]]는 친명배금을 표방하다가 [[병자호란]]으로 탈탈 털린다. 이 양난을 기점으로 [[유교|유학]]의 영향력이 공고해지고, 조선의 역사는 후기로 접어든다.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 조정에서는 청나라에게 당한 수치를 씻자는 [[북벌론]]과 청나라를 본받자는 [[북학론]]이 대두되었으나 [[조선 효종|효종]]이 [[의료사고]]로 숨지면서 북벌론이 흐지부지되고, 북학론도 여전히 청나라를 오랑캐로 치부하는 관료들 때문에 국정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이후 권좌에 오른 [[조선 현종|현종]]은 [[경신대기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을 수습하고 황폐화된 조선을 복구하며 서인을 견제하는 데 힘을 썼다. 이즈음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임금인 [[영조]]는 당쟁을 혁파하기 위하여 [[탕평책]]을 폈으나 붕당정치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이때를 전후하여 [[천주교]]가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 [[조선 정조|정조]] 역시 [[탕평책]]을 폈을 뿐만아니라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을 발굴하여 [[수원 화성]]을 축성하는 등 개혁 정치를 시도했지만 1800년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정조가 사망하면서 조선의 국운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19세기 [[조선 순조|순조]]·[[조선 헌종|헌종]]·[[조선 철종|철종]] 3대에 걸쳐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 세력의 세도 정치가 60여 년 동안 계속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들 외척가문은 왕위 임명에도 손을 대는 등 부정부패 속에서의 절대권력을 누렸다. 그러던 가운데 흥선군 [[이하응]]이 풍양 조씨의 대표 [[신정왕후 (조선)|조대비]]와 결탁하여 둘째아들 명복을 조선 국왕 자리에 올리는데, 바로 [[조선 고종|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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