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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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군이 월미도를 접수하다 ====
{{참고|한국 전쟁}}
남북에 정부가 수립되자 미군은 1949년 6월 남한에서 철수했다. 월미도에서도 미군이 나갔는데,철수했고 그 자리에 바로 한국 해군이 들어왔다. 한국 해군은 한국 전쟁이 터지자마자 월미도에서 잽싸게재빠르게 철수했는데물러났는데, [[북한군]]이 한강을 넘지 못하고 발이 묶이자 다시 월미도로 돌아왔다. 며칠 후 북한군이 한강을 넘자마자 한국 해군은 뒤도완전히 철수를 돌아보고 도망을 갔고했고, 곧이어 인민군이 월미도에 들어왔다. 육지가 거의 다 인민군에게 점령되었으므로점령된 월미도민탓에 대부분은도민들은 피난을 가지 못했고수 없었고, 배가 있는 몇몇 가족만 [[영종도]]나 [[작약도]]로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월미도에서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는데,않았다. 이를 본 피난자 일부는 다시 월미도로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 18세였던 월미도 주민 이범기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ref name=":0" />{{Rp|202-203}}{{인용문2|해군이 완전히 후퇴한 그날 인민군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인천에서 월미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얼음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인민군이 전차를 세워놓고는 바로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작약도로 피난을 가 있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아마 한 오후 4-5시 경이었을 거예요. 해가 저물 무렵인데 월미도를 쳐다보니까 인민군 전차가 월미산에 포를 한 세 발 쏘더라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죠. 그런데 연기만 나고 아무 대항이 없었지. 그 후 우리 가족은 배를 수소문해서 다시 월미도 원래 살던 집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다시 영종도로 가서 며칠 있다가 월미도로 돌아왔어요. 그 뒤로는 쭉 월미도에 있었어요. 영종도에서 월미도로 올 때 배에서 내리니까 인민군 장교로 보이는 사람이 우릴 부르더니 신분을 물어보고,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 갔다 오냐고 묻더라고. 피란 갔다 돌아왔다고 하니 이것저것 다 물어본 다음 집으로 보내줬어요. 좀 겁이 났지. 겁이 났는데 내가 죄진 건 없으니까 무슨 일이야 생기겠냐 생각했지요.
<ref name=":0" />{{Rp|20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