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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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인조 21년)에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건너간 [[신유]]의 [[해사록]]에 실려 있는 “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톰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에 임하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이때 [[부산진성]]은 오늘날 [[동구 (부산광역시)|동구]] 좌천동 북쪽의 증산을 둘러싸고 있는 [[부산 정공단|정공단]] 자리에 성문이 있어 성문 바로 아래가 바다와 접해 있었으므로 이 시문에 나오는 산은 좌천동의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18세기 중엽에 [[변박]]이 그린 “왜관도”를 보면 이 증산을 점초(点抄)하여 “부산고기”(釜山古基)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구 수정동에서 산을 넘어 부산진구 가야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가모령”이라고 한다. 이 가모(可牟)·감()은 가마를 즉 “가마”()를 뜻하는 것으로 가모령·감(枾, 嶺)은 한국의 방언을 한자로 차용한 것으로 가마재·가마고개(釜峙) 즉 부산재(고개)를 뜻한다. 그리고 고로(古老)들은 증산을 시루산이라고 하는데 시루()와 가마()는 같은 취기(炊器)로 금속성의 가마가 나오기 전에는 동일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다"라고 한 가마꼴의 산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뒤에 있는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웹 인용|제목=부산유래 |url=http://www.busan.go.kr/04ocean/0405history/01_01.jsp |날짜=2012-01-02 |저자=시사편찬실 표용수 |출판사=부산광역시 누리집 |확인날짜=2013-02-17 }}</ref>
 
=== 영문 표기 변경과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