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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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 심상정(부)
| 활동 기간 = [[1924년]] ~ [[1936년]]
| 자녀 = 심재건(장남) <br/> 심재광(차남) <br/> 심재호(삼남)
| 친척 = [[심우섭 (1890년)|심우섭]](첫째형) <br/> [[심명섭]](둘째형) <br/> 심재영(조카) <br/> 심천보(손자) <br/> [[윤극영]](외사촌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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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01년 경기도 과천군(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심훈의 집안은 '친일적 시류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양반 가문 출신의 중산지주 계급'으로, 심훈의 형은 [[친일파]]였고 <ref name="서적1">{{서적 인용 |저자=전국역사지도사모임|제목=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날짜=2016-11-30|출판사=유씨북스|ID={{ISBN|9791195695935}}|쪽=64-66 }}</ref>, 심훈의 첫번째 부인은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청풍군 [[이해승]](李海昇)의 누이 이해영이었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던 심훈은 4학년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3월 5일 [[남대문]] 학생시위에서 구속되어 8개월형을 받아 투옥되었고,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 집안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ref name="서적1"/>
 
이듬해 1920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위안장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921년 철학과를 중퇴한 뒤, 중국 항저우로 가서 [[저장 대학|저장 대학교]] 극문학과로 재입학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듬해 1922년에 중퇴하고, 극문회를 조직하였다. 중국에 망명하는 동안 베이징에서 [[신채호]]와 [[이회영]] 등과 교우하며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부르짖었다.<ref name="서적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