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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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의 야요이인 일본진출(韓半島弥生人日本列島進出) ==
 
야요이시대를 나타내는 묘제의 용어에는 지석묘,방형주구묘라고 하는 이장시설의 외부구조로 구분하는 것이 있고 목관묘,토광묘같이 이장시설 내부에 있는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있다.
특히 야요이인들이 한반도(韓半島) 북부와 남부에 살고 있던 한반도 도래인(韓半島渡來人)이라는 증거(證據)는 야요이(弥生人)의 묘제(墓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카메칸보라고 불리우는 옹관묘는 한반도 남부에서 전해져서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시마바라반도의 후쿠오카시(島原半島),사가현 칸자키군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韓國)에만 발견되는 지석묘(支石墓)의 경우에는 큐슈(九州)의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에 퍼져갔다.또한 한반도 남부(韓半島南部)에서 대량으로 발견되는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는 야요이인(弥生人)의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큐슈북부(九州北部)에서부터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가 발견되며 특히 일본 칸사이 킨키 지방(近畿地方)까지 퍼져 킨키 지방에 방형주구묘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야요이 시대 중기(中期)에는 한반도(韓半島)의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가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중부지방,관동지방(中部地方,関東地方)까지 도래(渡來)하게 된다.
 
특히 야요이인들이 한반도(韓半島) 북부와 남부에 살고 있던 한반도 도래인(韓半島渡來人)이라는 증거(證據)는 야요이(弥生人)의 묘제(墓祭)에서 찾아볼 수 있다.야요이인의 묘제로서 목관묘(木棺墓)는 한반도에서 도래(渡來)된 묘제로서 야요이시대전기말(弥生時代前期末)까지 서일본(西日本)에 널리 퍼져 특히 키나이(畿内)지방에 주로 방형주구묘 내부의 주체부로서 목관묘가 쓰여졌다. 일본에서 카메칸보라고 불리우는 옹관묘는 한반도 남부에서 전해져서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시마바라반도의 후쿠오카시(島原半島),사가현 칸자키군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韓國)에만에서만 발견되는 지석묘(支石墓)의 경우에는 큐슈(九州)의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에 퍼져갔다.또한 한반도 남부(韓半島南部)에서에서만 대량으로 발견되는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는 야요이인(弥生人)의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큐슈북부(九州北部)에서부터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가 발견되며 특히 일본 칸사이 킨키 지방(近畿地方)까지 퍼져 킨키 지방에킨키지방에 방형주구묘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야요이 시대 중기(中期)에는 한반도(韓半島)의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가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중부지방,관동지방(中部地方,関東地方)까지 도래(渡來)하게 된다.
 
== 명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