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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미사일 방어]]가 없었다. 소련 [[ICBM]]이나 [[SLBM]]은 미국의 [[조기경보레이더조기경보레이다]]에 포착되어, 미국도 동시에 맞발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쿠바에 배치된 [[SS-4]]는 1,800 km 떨어진 [[워싱턴 DC]]와 너무 가까워서, 조기경보가 되기 전에 핵공격을 완료할 수 있어서, 미국이 크게 위협받았다.
===1964년===
1964년 미국의 [[MGM-31 퍼싱|MGM-31 퍼싱 I]] 핵미사일이 서독, 한국에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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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싱 II]]의 배치를 놓고 당시 서독에서는 시민, 지식인과 학생 심지어 군인들도 참가한 거대한 평화운동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정확도가 극히 높아져 폭발력이 낮아진 퍼싱II는 적의 지휘부와 벙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선제공격무기이며, 따라서 소련의 재래식 침공에도 나토가 핵전쟁을 먼저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토의 이중전략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으로 하여금 군비경쟁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1987년 [[INF 조약]]으로, 유럽에서 모든 중거리핵미사일을 제거하는 결과를 낳았다.<ref>‘북핵 실제 반대’ 중국환상과 우리의 대북정책 실패, 데일리NK, 2016-09-19</ref>
 
당시에는 [[미사일 방어]]가 없었다. 미국 [[ICBM]]이나 [[SLBM]]은 소련의 [[조기경보레이더조기경보레이다]]에 포착되어, 소련도 동시에 맞발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독에 배치된 [[퍼싱 II]]는 1,800 km 떨어진 [[모스크바]]와 너무 가까워서, 조기경보가 되기 전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어서, 소련이 크게 위협받았다. 워싱턴에서 1,800 km 떨어진 곳은 [[쿠바]]이다.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