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전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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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mage of Nông-trí-Cao's father Nông-tồn-Phúc among his clansmen and followers.jpg|right]]
'''찌에우타인제'''(Chiêu Thánh Hoàng Đế), 휘는 '''눙똔푹'''(Nùng Tồn Phúc)은 대월 쯔엉신국의 제1대 군주이다.▼
'''농전복'''(儂全福, ? ~ [[1039년]])은 [[11세기]] 초 [[송나라]] 광서(廣西) 광원주(廣源州, 현재 [[징시시]], [[톈둥현]] 일대)의 최대 세력이었던 광원주만(廣源州蠻, 현재 [[중국]]의 [[좡족]], [[베트남]]의 [[눙족]])의 지도자이다. [[좡어]]로는 '''눙 신푹'''(Nungz Cienzfuk<ref>[[위키백과:좡어의 한글 표기]]</ref>)이라고 하며, [[베트남]] 측 사서에는 '''눙똔푹'''({{vie|v=Nùng Tồn Phúc|hn=儂存福|eum=농존복}})이라고 기록되었다.
== 생애 ==
농전복의 아버지 농민부(儂民富)는 일찍이 [[북송 태종|송 태종]]으로부터 검교사공(檢校司空), 어사대부(御史大夫), 상주국(上柱國)으로 임명받았으며, [[북송 진종|송 진종]] 초에 농전복이 농민부의 뒤를 잇자 진종은 농전복을 당유주(儻猶州, 현재 [[광시성]] [[푸쑤이현]])의 지주(知州)로 임명하였다. 한편, 동생 농존록(儂存祿)은 만애주(萬涯州, 현재 [[광시성]] [[다신현]]의 지도자가, 처제인 당도(當道)는 무륵주(武勒州, 현재 [[광시성]] [[푸쑤이현]] 경계)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농전복이 이 둘을 죽이고 만애주와 무륵주를 점령하였다. 광원주가 송나라와 베트남의 경계에 근접하였으므로, 농전복은 베트남의 [[리 왕조]]에 칭신하였다. 당시 농전복은 광원주의 금광을 개발하였고, "중국과 여러 동(峒)의 백성들을 불러 끌어들이니 그 무리가 매우 많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다.
[[1029년]], 농전복은 그의 땅에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장기국(長其國), 일설에는 장생국(長生國)이라 하고 스스로 소성황제(昭聖皇帝)를 칭하였다. 이어 그의 아내 아농(阿儂)을 명덕황후(明德皇后)로, 아들 농지총(儂智聰)을 남아왕(南衙王)에 봉한 뒤 리 왕조에 더 이상 칭신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서농(西農)의 지도자 하문정(何文貞)이 리 왕조에 이를 보고하였고, 이에 [[1039년]] 2월에 [[리 태종]]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장기국을 기습 공격하였다. 농전복은 무리를 이끌고 달아나 산과 강에 숨었으나, 리 태종의 군대가 계속 추격해와 결국 농지총 등 다섯 명과 함께 사로잡혔다. 리 태종은 장기국의 성지(城池)를 파괴하고 그 무리를 초무한 뒤, 농전복 등을 [[탕롱]]에 압송해 살해하였다. 농전복의 다른 아들 [[농지고]]는 살아남아 도망갔고, 농전복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다.
[[분류:1039년 죽음]]
[[분류:좡족]]
▲'''찌에우타인제'''(Chiêu Thánh Hoàng Đế), 휘는 '''눙똔푹'''(Nùng Tồn Phúc)은 대월 쯔엉신국의 제1대 군주이다.
▲[[분류:따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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