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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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고려 ====
* 김봉술(金奉術) : 김선궁(金宣弓)의 장자, 문하시중(門下侍中)
* 김봉문(金奉文) : 김선궁(金宣弓)의 차자, 삼사우윤(三司右尹) 안일호장(安逸戶長)
* 김흥술(金興述) : 김봉문(金奉文)의 아들, 호장(戶長), 일파를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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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수(金季壽) : 13세손,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 김제(金濟) : 14세손, 김주의 형, 고려 말 절신(節臣), 판서(判書)에 추증, 시호 충개공(忠介公)
* 김주(金澍) : 14세손,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 고려 말에 사신(使臣)이 되어 중국에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가 개국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음, 시호 충정공(忠貞公), 서원에 배향, 일파를 이룸
==== 조선 ====
* [[김효정]](金孝貞) :
* 김지경(金之慶) : 김주의 증손자, 대사간·강원도관찰사·개성유수 등을 역임, 시호 경질(景質)
* 김경직(金敬直) : 김주 12세손, 문과 급제, 사도시정(司導寺正), 서원에 배향▼
* [[김응기]](金應箕) :
* [[김효원]](金孝元) : 김선궁(金宣弓)의 20세손, 문과 급제, 삼척부사(三陟府使), 호당(湖堂), 서원에 배향, 일파를 이룸
* [[김이원 (1553년)|김이원]](金履元) : 김효원의 동생, 문과 급제, 병조판서, 판중추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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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극빈(金克鑌 : [[정근옹주]] 부마, 선조의 서녀 사위
* 김승순(金承順) : [[숙신옹주 (정종)|숙신옹주]] 부마, 정종의 외손녀 사위
* [[김숙자 (1389년)|김숙자]](金淑滋) : 김흥술(金興述)의 13세손, 문과 급제, 사예(司藝), 시호 문강공(文康公), 서원에 배향,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음
* [[김종직]](金宗直) : 김숙자의 아들, 문과 급제, 형조판서(刑曹判書), 시호 문충공(文忠公), 서원에 배향,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으로 추앙
* 김교(金嶠) : 김흥술의
==== 근·현대 ====
* [[김범부]] : 독립운동가
* [[김동리]] : 소설가
* [[김윤환]] : 정무장관
* [[김동영]] : 정무장관
* [[김철수 (1933년)|김철수]] : 서울대 교수, 헌법학자
* 김우석(金佑錫, 1936 ~ 2013) : 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제13대 국회의원
* [[김태환 (1943년)|김태환]] : 제17·18·19대 국회의원
* [[김교흥]] : 제17대 국회의원
* [[김영환 (1955년)|김영환]] : 제3대 과학기술부 장관, 제15·16·18·19대 국회의원
* [[김영선 (1960년)|김영선]] : 변호사, 제15·16·17대 국회의원
* [[김창종]] : 헌법재판소 재판관
* [[김병만]] : 희극인
=== 집성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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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 ===
고려 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16세 '김문'(金文)은 슬하에 네 아들 [[김성원]](金成元), 김성부(金成富), 김성룡(金成龍), 김성여(金成呂)를 두었는데 이로부터 선산 김씨는 4대 계파(系派)를 이루게 되었다.
*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파조 [[김성원]](金成元)은 고려조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중서령(中書省)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 정신으로 선산(善山)에 내려와 고려 유신으로 절의를 지켰다. 화의(和義)는 [[구미시|선산]](善山)의 별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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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숭(金崧) : 고려 때 문하시중
* 김인선(金印宣) : 집현전 태학사
* 김성원(金成元) : 서운관정, 중서령(中書令)에 추증
* '''김기'''(金起) : 중서령 김성원의 아들, 고려 말에 등제하여 정순대부
* 김성부(金成富) : 전의부정(典醫副正)
* 김성룡(金成龍) : 산원동정(散員同正)
* 김성여(金成呂) : 별장동정(別將同正), 평안도 정착
==== 조선 ====
* 김경도(金敬道) : 화의군 김기 아들, 조산대부 밀양교수
* 김중곤(金仲坤) : 조선 때 절충장군 ▼
* 김경적(金敬迪) : 화의군 김기 아들, 교수(敎授)
* 김취성(金就成. 1492 ~ 1550) :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광좌(金匡佐)이다. 일찍이 박영(朴英)의 문하에 들어가서 『중용』과 『대학』을 배워 존심양성(存心養性)의 방법과 관물성찰(觀物省察)의 오묘한 뜻을 터득하고,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묘용(妙用)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평생을 학문 탐구에 몰두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만년에 당시의 [[김정국]](金正國)과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의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함으로써 약성(藥性)과 경락(經絡)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병든 사람을 많이 치료하였다. 저서로는 『진락당집』이 있다. ▼
* 김탁(金逴) : 병조참의
* 김취문(金就文. 1509 ∼ 1570) : 호는 구암(久菴). 아버지는 김광좌(金匡佐)이다. 어려서부터 형 김취성(金就成)과 함께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1537년(중종 3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전전하다가 사성(司成)이 되었다. 명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568년(선조 1)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집으로서는 《구암집》(久庵集)이 전한다. 시호가 정간(貞簡)에서 문간(文簡)으로 바꾸었다.▼
* 김광좌(金匡佐. 1466∼1545): 화의군 김기 현손, 충무위(忠武衛), 증이조참판, 들성에 세거하던 선산 임씨 상장군(上護軍) 임무(林珷)의 사위로 처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들성에 입향
* 김취성(金就成. 1492 ~ 1550) : 조선 전기의 학자,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장자,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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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취문'''(金就文. 1509 ∼ 1570)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菴)
* 김종무(金宗武. 1548 ~ 1592) : 구암 김취문의 아들, 임진왜란 때 상주 북천전투에서 순국, 이조판서에 추증,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
* 김정묵(金正默. 1888 ~ 1944) : 일명 해산(海山)·규환(奎煥).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김천영(金天英) : 김취빈(金就彬)의 손자,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 성균관 전적
* 김양선(金揚善) : 증이조참판 김광좌(金匡佐) 증손자, 조선 후기 문신, 동강 [[김우옹]]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6년]](광해군 8)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감찰·형조좌랑을 거쳐 경상도사를 역임
* 김하량(金廈樑) :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1632년]](인조 10) 식년문과 병과 급제, 안동부사·판결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 예조판서에 추증
* 김원섭(金元燮) : 한성우윤 김하량(金廈樑)의 아들,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에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세하자 관직에서 쫓겨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1692년]] 대신 [[민정중]](閔鼎重)의 죄를 논하다가 단천으로 유배되었고, 이후 경흥으로 유배지를 옮겨 6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 [[1699년]] 풀려났으며, [[1710년]] 공주 보문산의 오두막에서 별세하였다.
* 김몽화(金夢華) : 문간공 김취문의 후손, [[1754년]](영조 30) 4월 문과 급제, 한림·설서·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 김성진(金聲振) : 교위 김취연의 후손, [[1801년]](순조 1) 문과 급제, 사헌부감찰, 경상도 도사를 역임
==== 근·현대 ====
▲* 김정묵(金正默. 1888 ~ 1944) : 일명 해산(海山)·규환(奎煥).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김덕]] : 21대 통일원장관 겸 부총리
* [[김관용]] : 경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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