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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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에서 출항할 당시 구리타 제독 휘하의 중부군은 5척의 전함([[야마토함|야마토]], [[무사시 (전함)|무사시]], [[나가토 (전함)|나가토]], [[곤고 (전함)|곤고]], [[하루나 (전함)|하루나]])과 10척의 중순양함([[아타고함|아타고]], [[마야함|마야]], [[다카오함|타카오]], [[초카이함|초카이]], [[묘코함|묘코]], [[하구로함|하구로]], [[구마노함|쿠마노]], 스즈야, [[치쿠마함|치쿠마]]), 2척의 경순양함([[노시로함|노시로]], [[야하기함|야하기]]) 및 15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ref name="Morison1956"/>
 
구리타 함대는 10월 23일 자정 무렵에 [[팔라완 섬]] 주위를 통과하게 된다. 미해군 잠수함 다터(USS Darter)와 데이스(USS Dace)는 근처의 수면에 위치하고 있었다. 10월 23일 00:16에 다터함의 레이더가레이다가 27,000 m 거리에서 일본 함대를 탐지한다. 다터함 함장이 육안으로 접적을 확인하고 최소한 3회에 걸쳐 접적을 보고하는 사이에, 두 잠수함은 일본 함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야마토함의 무선병은 최소한 한번 이상 해당 무전을 탐지하였지만, 구리타 제독은 적절한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ref name="Morison1956"/>
 
다터함과 데이스함은 최대 출력으로 수상 기동하여 구리타 함대 진형의 진행 방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일출과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공격은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05:24에 다터함은 6발의 어뢰를 발사하였으며, 적어도 4발이 구리타 함대의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다카오급)에 명중한다. 10분후, 다터함은 다카오함에 두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 05:56에 데이스함은 마야함(다카오급)에 네발의 어뢰를 명중시킨다.<ref name="Morison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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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야마시로''는 계속 항해가 가능하여 니시무라 중장은 03:40 경 '''ワレ魚雷攻撃ヲ受ク、各艦ハワレヲ顧ミズ前進シ、敵ヲ攻撃スベシ'''{{해석|우리는 어뢰공격을 받았다. 각 함은 본함에 신경쓰지 말고 전진하여 적을 공격하라}}라는 지시를 내리고 계속 진격했으나 이 지시가 내려진 시점에서 ''후소''와 ''야마구모'', ''미치시오''가 이미 격침되었고 ''아사구모''가 낙오하여 니시무라 함대는 세 척만이 남아 있었다.
 
03:16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레이더가레이다가 ''야마시로''를 42,000야드 거리에서 감지하였으며, 30,000야드 거리에서부터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03:53에 8문의 16인치 주포를 22,800야드 거리에서 발사하여 첫 번째 일제사격이 ''야마시로''에 명중했다. 총 93발을 사격하였으며, 03:55에 ''캘리포니아''와 ''테네시''가 합류하여 각기 63발과 69발의 14인치 함포를 사격하였다. 레이더에레이다에 기반한 화기 관제 기술을 운용한 미해군은 전통적인 화기 관제 기술을 운용하던 일본 해군이 반격할 수 없는 사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세 척의 미해군 전함은 레이더레이다 화기 관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적절한 시간에 사격에 함류하지 못하였다. ''메릴렌드''는 다른 함의 사격에 의하여 발생한 물보라를 기준으로 48발의 16인치 함포를 목측 사격하였으며, ''펜실베니아''는 결국 사격하지 못하였다. ''미시시피''는 한 번의 일제사격을 수행할 기회를 얻었으며, 이 사격은 전함이 전투함에 대하여 발사한 마지막 일제사격이었다.<ref name="Morison1956"/>
 
''야마시로''와 ''모가미''는 미국 전함의 16인치 함포와 14인치 함포에서 발사된 다수의 철갑탄 외에도 미국 구축함의 공격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시구레''는 뱃머리를 돌려 퇴각하고자 하였으나 조향력을 잃고 완전 정지하였다. ''야마시로''는 함대 사령관인 니시무라 중장, 함장인 시노다 가쓰키요({{lang|ja|篠田勝清}}) 대령 등과 함께 04:20에 침몰하였으며, ''모가미''와 ''시구레''는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니시무라 함대의 후위를 담당하는 시마 함대는 본대 7척이 타이완의 [[마궁 시|마코 경비부]]에서, 그리고 다른 임무 수행 관계로 제21구축대의 세 척(''와카바'', ''하쓰하루'', ''하쓰시모'')은 마닐라에서 각각 출발했다. 그러나 제21구축대는 10월 24일 [[술루 해]]에서 미국 측의 공격을 받아 ''와카바''가 격침되어 본대와의 합류를 포기하고 마닐라로 돌아갔다. 한편 제21구축대의 세 척과 합류하지 못한 시마 함대 본대는 니시무라 함대의 후방 35 해리(64&nbsp;km)에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마 함대의 레이더는레이다는 다수의 섬에서 나타나는 난반사에 의하여 거의 무용지물이였으며, 특히 어뢰정과 같은 작은 함정은 거의 탐지하지 못하였다.<ref>Tully (2009), p. 167.</ref> 결국 경순양함 ''아부쿠마''가 미국 어뢰정 PT-137이 쏜 어뢰를 맞고 낙오했다. 여섯 척으로 줄어든 시마 함대는 퇴각중인 니시무라 함대의 잔존 병력과 마주친다. 전함 ''후소''의 두동강난 잔해를 본 시마 중장은 니시무라 함대에 소속된 두 전함이 모두 침몰한 것으로 판단하고 함대에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후퇴 과정에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나치''가 8노트의 저속으로 퇴각중이던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를 정지해 있는 것으로 오인, 접근하다 충돌하여 ''모가미''의 조타실이 침수된다. 시마 중장은 낙오한 ''아부쿠마''와 크게 손상된 ''모가미''에게 구축함 ''우시오''와 ''아케보노''를 각각 호위함으로 파견하여 퇴각시키려 했으나 미국측의 공습을 받아 ''모가미''는 최종적으로 생존 승무원을 ''아케보노''로 옮겨태우고 자침시키기에 이르고, ''아부쿠마'' 역시 미국측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한편 뱃머리 부분이 손상되어 표류하던 ''아사구모''는 ''모가미''와 ''시구레''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가 ''덴버''와 ''콜롬비아''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이로써 니시무라 함대 소속 일곱 척의 전투함 중 ''시구레''만이 살아남아 수리가오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ref>''시구레''는 "呉の雪風、佐世保の時雨"{{해석|구레의 유키카제, 사세보의 시구레}}라고 칭해질 정도로 구레 진수부 소속의 구축함 ''유키카제''와 함께 전투에서의 생존률이 높은 배였다. 그러나 이 ''시구레''도 약 3개월 뒤인 1945년 1월 24일, 말레이반도 근처에서 미 해군 잠수함 ''블랙핀''(USS Blackfin, SS-322)에게 격침되어 37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ref> 한편 시마 함대의 전투함은 열 척 중 24일 격침된 ''와카바'', 25일 낙오 후 26일 격침된 ''아부쿠마''를 제외한 여덟 척이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살아남았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Howard (1999). <!-- What title is that? --></ref>
 
수리가오 해협 전투는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이루어진 두 번의 '전함 대 전함' 전투 중 하나이며,<ref>다른 하나는 과다카날 전역 중에 이루어진 [[과다카날 해전]]</ref>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 전투이다. 또한 역사상 마지막으로 ''[[정자전법]](Crossing the T)''이 사용된 전투였다. 그러나 수리가오 해협 전투에서 정자전법이 사용된 시점은 이미 일본군 함대가 세 척의 전투함만 남아있는 약화된 상태였으므로, 전투의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ref name="Morison1956"/><ref name="Howard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