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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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발발한 제2차 아편 전쟁, 일명 '''[[애로호 전쟁]]'''은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의 개방이 기대에 못 미치자 영국이 [[프랑스]]와 함께 청나라를 공격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광활한 영토를 가진 청나라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영국의 무역은 생각만큼 확대되지 못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면포는 영국의 주력 수출품인 [[양모|모직물]]과 [[인도]]산 [[면화]]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게다가 제1차 아편 전쟁으로 광둥을 중심으로 대영 항쟁이 전개되었다. 이에 영국은 중국인 소유의 영국 해적선 애로호를 빌미로 한 [[애로호 사건]]을 일으켰다. 19세기 중반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은 기독교인들의 의심을 불러 일으켰고 외국인들은 청나라로 들어오는 것이 금지 프랑스 외방전교회 선교사 오귀스트 샤프들랭(Auguste Chapdelaine)이 처형돼 프랑스와 영국에 청나라 군대를 파견했다.
 
영국은 프랑스와 구성한 연합군으로 [[광저우]]를 침략하여 방화와 살인을 저질렀고, 이와 동시에 [[러시아]]군도 청나라 영토로 진격했다. 연합군은 [[톈진]]을 점령하여 불평등 [[조약]]인 [[톈진 조약]]을 맺었다. 톈진조약은 청나라가 영국과 프랑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개항 항구를 확대하며 아편 무역을 합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청나라는 이때 [[기독교]] 공인도 약속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