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천 (188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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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김일성 이름으로 지은 만시(輓詩)는 박상진 의사가 1921년 순국한 직후에 박의사의 부친에게 지어보낸 것으로 보이며, 김광서 장군이 1921년에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을 썼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1945년 12월에 간행된 김종범(金鍾範), 김동운(金東雲) 공저, 『해방전후(解放前後)의 조선진상(朝鮮眞相)』에도 북한 김일성은 김광서(金光瑞, 金擎天) 장군의 명의를 도용 중이라상속중이라 한다고 했다.<ref>김종범(金鍾範), 김동운(金東雲) 공저, 『해방전후(解放前後)의 조선진상(朝鮮眞相)』, (서울, 朝鮮政經硏究社, 1945. 12. 25); 복간본 『해방전후의 조선진상』 : 제2집 독립운동과 정당 급(及) 인물 (서울, 돌베개, 1983) p.190.</ref>
 
그의 일본육사 3년 후배인 [[김준원 (1888년)|김준원(金埈元, 1888~1969)]]은 1918~1922년간 [[일본의 시베리아 개입|일본의 시베리아 출병(シベリア出兵)]] 때 일본군 중위로 시베리아에 파견되었는데, 당시 김경천이 김일성 장군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증언을 남겼다.<ref>[http://news.joins.com/article/1409615 김광서가 즉 김일성 장군이다.] 중앙일보 1975.06.20 종합 6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