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태그: m 모바일 웹
34번째 줄:
아버지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김시묵]](金時默)이고, 어머니는 당성 부부인(唐城府夫人) 홍씨이다.
 
정조의 배필이 된 까닭은 그녀가 [[조선 현종|현종]]비 [[명성왕후]]의 친정집안인 [[청풍 김씨]]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명성왕후가 숙종을 낳았듯이, 정조의 배필이 되어 후손을 낳기를 바라는 [[조선 영조|영조]]의 뜻이었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id/kwa_12108007_004|제목=순조실록|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그녀가 세자빈 된 후 그녀의 사촌여동생도 시모인 헌경왕후의 남동생과 혼인하여 왕실의 이중삼중으로 인척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9세인 [[1761년]](영조 37년) 삼간택을 거쳐 별궁으로 들어갔으나 [[천연두]]를 앓아 이듬해 [[1762년]](영조 38년) [[2월]] 10세에 11세인 세손와세손과 가례를 올려서 세손빈(世孫嬪)이 되었다.
 
[[임오화변]] 때 영조가 헌경왕후와 효의왕후에게 제각기 사가로 가라고 명하였으나, 효의왕후가 사가로 가지 않고 시어머님이 계신 곳에 있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영조가 그 말을 듣고 매우 착하게 여기어 같이 헌경왕후의 사가로 나가라고 허락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 다시 들어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효의왕후가 어린아이로 어려운 때를 당하여 차분하게 조신과 처사를 올바르게 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영조의 환심을 산 것이다.<ref>{{웹 인용|url=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JO&jwId=kwa_121&moId=080&daId=070&gaLid=kwa_12108007_003&gaId=&yoId=&ilId=&leId=|제목=순조실록|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JO&jwId=kwa_121&moId=080&daId=070&gaLid=kwa_12108007_003&gaId=&yoId=&ilId=&leId=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