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센이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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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nowiki></nowiki>
'''선수 경력'''
* [[주니치 드래건스|주니치 드래곤스]](1969 ~ 1982)
'''감독·코치 경력'''
* 주니치 드래곤스(1981 ~ 1982, 1987 ~ 1991, 1996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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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196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미즈하라 시게루]]가 감독으로 취임했던 [[주니치 드래건스|주니치 드래곤스]]에서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 소년 시절부터 [[한신 타이거스]]의 투수인 [[무라야마 미노루]]를 동경하여 무라야마와 같은 등번호 11번을 착용하고 싶었지만 번호가 비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 숫자를 2배로 늘린 22번을 희망했다. 입단 3년차인 1971년에 주니치의 에이스 번호인 20번으로 변경한 후에도 매우 애착이 있는 번호였다고 한다.
 
1971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직구는 자취를 감췄지만 변화구를 구사하여 선발과 구원 투수로서 활약했다. 1974년에 시즌 10세이브를 기록하여 [[일본 프로 야구 최다 세이브 투수|최다 세이브]](그 해에 타이틀이 제정됨) 타이틀을 차지함과 동시에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하는 등 요미우리의 10년 연속 리그 우승을 저지하면서 20년 만에 두 번째로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큰 기여를 했으며 우승을 결정한 경기에서는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와의 [[1974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는 실질적으로 3번이나 구원에 실패하는 등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팀도 2승 4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