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빅혼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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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미주리 군관구 사령관 [[필 쉐리던]]은 [[남북 전쟁]]에서 활약한 부하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에게 명령을 내려 인디언의 성지로 원정을 보냈다. 협정을 위반한 연방 정부에 인디언 측은 강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1874년]] 6월 크룩의 부대는 [[크레이지 호스]]의 부대와 전투를 벌이다 후퇴를 하였다. 커스터가 속한 테리 부대는 리틀 빅혼 강(그리시 그래스 강) 거슬러 올라가 남하했다.
 
[[1876년]] 육군 장관 셔먼은 인디언 소탕군을 편성하였다. 커스터는 제7기병대의 연대장으로 참가를 하게 된다. 작전은 [[몬태나주]] 남동부의 [[수 족]]의 본거지를 3개의 중대가 세 방향에서 포위하는 것이었다. 커스터 중대의 인디언 척후는 강가에 집결해 있던 인디언 부족들 약 1500명의 [[티피]] 야영지를 발견했다. 알프레드 테리 장군, 존 기번 대령의 중대는 협공을 계획했고, 26일에 총공격을 하기로 하고 커스터 중대를 남쪽 상류에 파견하였다. 이 때 기번 대령은 커스터 중령에게 “너무 욕심 내지 말게! 인디언은 워낙 많이 있으니까”라고 조언했다. 커스터가 가장 신임하던 인디언 척후, 리족(아리카라 족)의 [[블러디 나이프 추장]]이나 수 족과 프랑스인 혼혈 척후 [[미치 부이어]](모두 전사)도 “수 족이 너무 많으니까 조심하라”라고 몇 번이나 커스터에게 충고를 했다. 그들 척후는 전력 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유품을 커스터에 맡기는 등 전사를 각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