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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1976년 9월 11일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말레이시아]]전에서 1-4로 뒤지고 있을 때 후반 83분,87분,89분 단 6분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해 무승부로 만든 일화가 유명하며 특히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과의 정기전을 치룰 때마다 눈부시게 활약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였던 [[1986년]] [[6월 10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와의 경기가 자신의 마지막 [[A매치]]가 되었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국가대표로 130경기에 출전해 58골을 넣었는데 [[A매치]] 58골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선수 중 [[A매치]] 최다 골 기록이다.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에서 최초로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한 축구 선수 명단|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 플레이 스타일 ==
* [[승부차기]] 실축 경험에 따른 공포감으로 실제 경기 중에 [[승부차기]] 기회가 와도 자신이 찬 적이 거의 없었지만 대표팀 [[A매치]] 통산 135경기 58골, [[푸스발-분데스리가|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 98골을 득점할 만큼 탁월한 골 결정력을 자랑했다. 또한 [[푸스발-분데스리가|분데스리가]]에서 기록한 98골 중 [[페널티 킥]]에 의한 득점은 단 한 골도 없다.
* 체격이 좋은 편인데다 경마장으로 보내도 좋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빠르게 돌진하며 드리블하는 스타일로 상대 수비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신체 조건이 좋고 거친 몸싸움을 하는 선수들이 많은 [[푸스발-분데스리가|분데스리가]]에서도 그의 공격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 대표팀에서는 중앙 뿐만 아니라 사이드에서 돌파하는 윙 역할을 많이 맡았고, 그 결과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 냈다. 이후 윙을 활용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방식은 대표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변병주]], [[서정원]] 등으로 이어졌다.
* 클럽에서의 포지션은 논란이 있는데 그 이유는 대표팀에서는 윙으로, 분데스리가에서는 센터 포워드로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3-5-2의 전술을 자주 사용했는데 차범근은 투톱 중 한명으로 뛰었지만 필요할때 윙어의 역할을 해주는 탓에 투톱 중 처진 곳에 위치했다. 즉 분데스리가에서 정확한 그의 포지션은 '윙어 역할을 해주는 처진 스트라이커' 였다.
* 언제나 정확한 슈팅을 하였고, 골대를 크게 빗나가거나 어이없게 높이 뜨는 슛은 거의 쏘지 않았다. 그는 묵직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하고 빠른 슈팅을 하였다. 그의 슈팅 자세는 마치 교본과도 같아서 당시 스포츠 잡지나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잡지에 그의 슈팅 순간 모습이 연속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다.
* 볼 간수에 능해 안정된 플레이를 펼쳐 상대 선수에게 좀처럼 공을 빼앗기지 않았다.
*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헤딩 경합을 하다 코뼈를 크게 다친 이후 한동안 헤딩슛은 별로 하지 않았으나 [[푸스발-분데스리가]] 데뷔골을 헤딩골로 장식한 후에는 헤딩슛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 지도자 경력 ==
[[독일]]에서 영구 귀국한 후 "차범근 축구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11월 23일]]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아, [[1991년]] [[K리그 클래식|K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1994년]] 시즌을 마치고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어 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997년]] [[1월 7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는데, 당시 대표팀의 상황은 어수선했다. 불과 한 달 전인 [[19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1996년 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에 2-6으로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며 [[박종환 (축구인)|박종환]] 감독이 불명예 퇴진했고, 선수단의 분위기도 매우 어수선했다.. 차범근은 이러한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여 [[1998년 FIFA 월드컵|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