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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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2월 6일 [[홍신학원 (서울)|홍신학원]]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채성의 4녀 중 장녀로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ref name="나경원1">{{뉴스 인용|제목=나경원… 그녀는 누구인가?|url=http://junggu.newsk.com/bbs/bbs.asp?exe=view&group_name=124&section=1&category=0&idx_num=6768&page=1&search_category=&search_word=&order_c=bd_idx_num&order_da=desc|출판사=중구신문|저자=유인숙|날짜=2008-04-10}}</ref> 본관은 [[나주 나씨|나주]]이며, 할아버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출신이다.
 
[[계성초등학교]] 시절 아동극 연출 지도 교사로 온 배우 [[서인석 (배우)|서인석]]에게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연극부 활동을 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색취미 '별난 의원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0078157|출판사=문화일보|저자1=강연곤|저자2=박수균|날짜=2004-08-07}}</ref>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여자고등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체 557명 중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ref>{{뉴스 인용|제목=비즈니스앤 '강인선 Live', "나경원, 미모보다는 따뜻함으로~"|url=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080914/0594080.htm|출판사=한국재경신문|저자=디지털뉴스부|날짜=2008-09-14}}{{깨진 링크|url=http://ent.jknews.co.kr/article/news/20080914/0594080.htm }}</ref> 그 후 [[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ref name="나경원2">{{뉴스 인용|제목=인터넷언론 신문법 등 관계법 적용해야|url=http://www.ysinews.com/ArticleView.asp?intNum=13529&ASection=001001|출판사=여수인터넷뉴스|저자=정차모|날짜=2008-08-23}}</ref>, 30세가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ref name="나경원선대위특보">{{뉴스 인용|제목=30代 女판사 한나라당 입당…나경원씨 선대위 특보로|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20922070557273&p=donga|출판사=동아일보|저자1=김승련|저자2=이정은|날짜=2002-09-22|확인날짜=2008-10-2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913055731/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20922070557273&p=donga|보존날짜=2014-09-13|깨진링크=예}}</ref>같은 학교 동기인 [[김재호 (법조인)|김재호]]와 [[결혼]]하였고,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이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피플]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정치인' 나경원 의원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people/201010/sp201010291710241066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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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계 입문 ===
2002년,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제16대 대선]] 기간, [[이회창]]의 요청에 따라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판사가 판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추미애]] 이후 두 번째다.<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판사 한나라 입당 사표|url=http://www4.hankooki.com/sed_news/200209/e200209231708153G510.htm|출판사=서울경제|저자=한동수|날짜=2002-09-23}}{{깨진 링크|url=http://www4.hankooki.com/sed_news/200209/e200209231708153G510.htm }}</ref> 나경원은 ‘소신 판결을 해온 이회창 후보를 법관시절부터 존경해 왔다’고 밝혔다.<ref name="나경원3">{{뉴스 인용|제목=대선 후 갈린 두 전직판사의 '명암'|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24204|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3-02-12}}</ref>
 
=== 변호사 활동 ===
2003년 3월 이회창이 대선에 패배하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ref name="나경원3"/>
2011년 7월 [[법무법인 바른]]에서 실제 변호사 업무를 하진 않았지만, 주요 구성원이었다.<ref>진영태.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107/e2011071117311993800.htm 홍준표·나경원, 로펌 '바른'서도 한때 한솥밥 ] {{웨이백|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107/e2011071117311993800.htm |date=20160304200203 }}. 서울경제. 2011년 7월 11일.</ref>
 
=== 정계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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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뉴스 인용|제목=한나라 '당 쇄신' 착수…조직정비 단행·연금법 당론 확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0158836|출판사=파이낸셜뉴스|저자=김영래|날짜=2005-01-20}}</ref> 이후 나경원은 한나라당의 공보부 대표로 활동하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통과에 반발하거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0&aid=0000006562 한나라당 불참 속 사학법 개정안 통과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검찰의 X파일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당의 입장을 발표<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12141831421&code=910402 경향닷컴 | Kyunghyang.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하기도 했다. 또 나경원은 출자총액제한제 법안 폐지를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792164 野의원 13명,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회 제출],2005-04-03</ref>
 
그 후 나경원은 오세훈 후보 서울시장 캠프에 합류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오세훈, 선거캠프 구성 돌입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0222691|출판사=파이낸셜 뉴스|저자=안만호|날짜=2006-05-01}}</ref>, 이 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전여옥]]에 이어 나경원을 유기준과 함께 한나라당 공동대변인으로 임명했다.<ref>{{뉴스 인용|제목=[프로필]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8/2006071870108.html|출판사=연합뉴스(조선일보)|날짜=2006-07-18}}{{깨진 링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7/18/2006071870108.html }}</ref><ref>[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607/h2006071820004221060.htm 한국일보 : 한나라 주류체제 강화 인사<!-- 봇이 따온 제목 -->]{{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0607/h2006071820004221060.htm }}</ref> 나경원은 당대변인으로서 일하며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이중보고를 비난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의 바다이야기 판매회사 근무와 관련한 의혹제기를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8222151211&code=910203 경향닷컴 | Kyunghyang.com<!-- 봇이 따온 제목 -->]</ref> 또 전효숙 헌법재판관의 헌법재판소 소장 임명과 관련해 절차와 인물을 들어 반대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하기도 했고<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01831141&code=910402 경향닷컴 | Kyunghyang.com<!-- 봇이 따온 제목 -->]</ref>,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련된 언급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키는 개구즉화"라는 당을 대변하는 논평을 남기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search/search.nhn?query=%B3%AA%B0%E6%BF%F8&st=news.all&q_enc=EUC-KR&r_enc=UTF-8&r_format=xml&rp=none&sm=all.basic&ic=all&so=datetime.dsc&rcnews=exist:032:020:023:028:&rcsection=exist:&stDate=range:20060101:20070101&detail=0&pd=4&start=21&display=20&startDate=2006-01-01&endDate=2007-01-01&page=1 나경원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8년 3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1년 8개월 동안 맡아왔던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고<ref>{{뉴스 인용|제목=한나라 '입' 나경원, 대변인 사퇴 의사|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3/16/2008031600322.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조선닷컴|날짜=2008-03-16}}</ref> 이어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에 공천을 받아 앵커 출신 [[신은경 (아나운서)|신은경]]과 대결을 펼쳐 <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 신은경 압도…서울 강북동(東) '예측불허'|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3/2008040301459.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홍영림|날짜=2008-04-03}}</ref>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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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서울특별시장]] [[오세훈]]이 2011년 8월 24일 실시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것에 따른 책임을 지고 8월 26일 시장직을 사퇴함에 따라 치러진 서울특별시장 보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2011년 10월 26일 개표 결과 [[박원순]] 후보가 약 215만여 표를 얻어 53.4%의 득표율을 나타냈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약 186만여 표를 얻어 46.2%의 득표율을 나타내어 낙선했다.<ref>[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487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최종투표 결과] 위키트리</ref>
 
이후 나경원은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을 통해 "어차피 당이 공천 안 했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남기고 4.11 총선에 불출마했다.<ref>[{{웹 인용 |url=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3/h2012030902375721000.htm |제목=나경원 불출마 "어차피 당이 공천 안 했을 것"] |확인날짜=2012-04-1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413081316/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203/h2012030902375721000.htm |보존날짜=2012-04-13 |깨진링크=예 }}</ref>
 
==== 제19대 국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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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나경원은 명확하게 반대의견을 고수했다. 나경원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을 의결하는 한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의회를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 등재 저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이후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이리나 보코바를 만나 우려를 전달하거나 외통위원회 소속 위원들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 위원국들을 방문하는 방문외교를 통해 꾸준히 등재 반대를 위한 노력을 펼쳤다. <ref>{{뉴스 인용|제목=외통위, 日 강제징용시설 유산등재 '반대' 방문 외교 나서|url=http://news1.kr/articles/?2272491|출판사=뉴스1|날짜=2015-06-09}}</ref>
또한 외통위원장으로서 멕시코를 방문하여,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 노력하는 등 다양하고 즉각적인 외교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 "멕시코와 경제교류·안보협력 공감대 형성"|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14/0200000000AKR20151114013400087.HTML?input=1179m|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5-11-14}}</ref>
북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한 북한 인권 문제나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동시에 통일 외교의 중요성과 북한의 동시 발전을 강조하는 투 트랙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2016년 1월6일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규탄 및 핵폐기 촉구 결의안'을 제안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통과된 규탄 결의안에서 "북한이 우리나라와 국제 사회의 거듭된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러한 도발행위 및 핵보유 시도는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넘어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ref>{{뉴스 인용|제목=국회 외통위 '北 핵실험 규탄 결의안' 채택|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0700172034512|출판사=포커스뉴스|날짜=2016-01-07|확인날짜=2016-02-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215221306/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0700172034512|보존날짜=2016-02-15|깨진링크=예}}</ref>
또한 미·러 주한대사들과 만나 북핵 제재 UN 안보리 결의를 요청하고<ref>{{뉴스 인용|제목=국회 외통위, 미·러 주한대사 만나 북핵 제재 안보리 결의 요청|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1100162146512|출판사=포커스뉴스|날짜=2016-01-11|확인날짜=2016-02-11|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215221303/http://www.focus.kr/view.php?key=2016011100162146512|보존날짜=2016-02-15|깨진링크=예}}</ref>, EU연합 회원국 대사들을 국회로 초청, 北제재 결의안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하는 등<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 "北 올바른 선택하는데 국제제재 한 목소리 필요"|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21/0200000000AKR20160121191300001.HTML?input=1195m|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6-01-21}}</ref>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이어 미국의 핵심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및 헤리티지재단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북핵문제 대응을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 "美, 전략적 자산 추가배치 등으로 中 압박해야"|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27/0200000000AKR20160127139200001.HTML?input=1195m|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6-01-27}}</ref>
한편 통일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할 때는 이리나 보코바(Irina Bokova)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문화유적 발굴 사업에 대한 유네스코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외교] 파리 방문 중인 나경원 외통위원장,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방북 제안|url=http://news.joins.com/article/19212887|출판사=중앙일보|날짜=2015-12-0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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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위대 행사 참석 ===
2004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위대]] 창립 50돌 행사를 열였을 때 나경원이 행사에 참석하여 논란이 일었다.<ref>{{뉴스 인용|제목=자위대 서울 행사에 한나라 의원 참석 논란|url=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40619021143844&p=hani|출판사=한겨레|저자1=이재성|저자2=유선희|날짜=2004-06-19}}</ref>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나경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제가 국회의원 되자마자였는데 일본 대사관에서 하는 행사라서 가야된다고 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자위대 창립 행사라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대사관의 방명록 이런것을 보시면 제가 참석 안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라고 밝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수요스페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편|url=http://linux23.kbs.co.kr/blueboard/board.php?db=1Radio/1Rkbsopen_bbs5&cmd=view&key=229&no=210&page=0&field=&findstr=|출판사=KBS|날짜=2008-10-15|확인날짜=2019-02-1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120015952/http://linux23.kbs.co.kr/blueboard/board.php?db=1Radio%2F1Rkbsopen_bbs5|보존날짜=2007-11-20|깨진링크=예}}</ref> 이후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하여 "자위대 행사에 참석했다는 비난의 글이 많다. 정황은 이렇다", "초선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행사 내용을 모른 채 갔다 현장에서 뒤늦게 알고 되돌아 왔다",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답변한 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변명처럼 보일까 우려되기도 했고, 행사 내용을 미처 살피지 못한 저의 불찰도 있었기 때문", "오늘 트위터에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글을 드린다"라고 밝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나경원, `7년 전 日자위대행사 참석' 논란|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275788|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1-09-21}}</ref> 하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는 “서울의 중심에서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참석한다는 게 말도 안 돼 국회의원실에 직접 공문을 보냈다”며 나경원이 무슨 행사인지 모르고 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해명이라고 반박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정대협,“나경원에 자위대 행사니 참석 말라는 공문 보냈다”|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31314231&code=910110=|출판사=경향신문|날짜=2011-09-23}}{{깨진 링크|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31314231&code=910110= }}</ref> 윤 대표는 지난 해 나 의원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50만 국민 서명’에 함께 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윤 대표는 “초선 의원 때에 비해 지금은 위안부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111435=|출판사=한겨레신문|날짜=2011-09-23}}</ref>
 
=== BBK 관련 발언 ===
2007년 나경원은 한나라당 대변인 시절, [[BBK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 설립했다"라고 말한 동영상이 공개된 데 대해 "다소 과장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있었을 뿐 ‘내가 설립했다’고 하지 않았으니 설립한 거라고 보기 힘들다<ref>{{뉴스 인용|제목=강재섭 'BBK설립과 소유는 별개'|url=http://www.newdaily.co.kr/_ezarticle/?im=artView&artid=3988044900|출판사=뉴데일리|저자=송수연|날짜=2007-12-17}}{{깨진 링크|url=http://www.newdaily.co.kr/_ezarticle/?im=artView&artid=3988044900 }}</ref>. 이것을 이명박 후보가 설립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다"라는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ref>{{뉴스 인용|제목="'나'라고 한적 없다" 나경원 대변인 패러디 화제|url=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71218151408660&p=khan|출판사=경향신문|저자=고영득|날짜=2007-12-18}}</ref> 이에 대해서 일부 언론과 [[대통합민주신당]]이 당시 발언의 앞부분만 떼어내서 해석을 해서 오해를 빚었다고 해명했다.<ref name=autogenerated1>{{뉴스 인용|제목='부드러운 입'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털어놓은 대선 비화|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1077|출판사=신동아|저자=이은영|날짜=2008-02-25}}</ref>
 
=== 여교사 관련 발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