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대한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출생 및 재위. 태양력은 1896년 이후 이므로, 그 이전 역사는 실록을 봄에 있어 혼돈이 없도록 양력 음력 공동표기 하였으며, 1896년 이후 날짜는 양력 단독 표기 함.
출처 고종실록 및 순종실록 및 승정원일기
109번째 줄:
 
== 치세 ==
[[1863년]] 음력 12월 13일에서 [[1907년]] [[7월 19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863년]] 12월 8일에서 [[1864년]] [[1월 16일]]까지 삼종숙모(三從叔母)이자 양어머니인 신정황후 조씨(神貞皇后 趙氏)가 1차 [[섭정]]을 하였고 [[1864년]] [[1월 16일]]에서 [[1866년]] [[2월 13일]]까지 생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2차 [[섭정]]을 하였으며 [[1866년]] [[2월 13일]]에서 [[1866년]] [[3월 26일]]까지 생부 흥선대원군의 최측근 대표였던 [[영의정]] [[조두순 (1796년)|조두순]](趙斗淳)이 3차 섭정하였고 [[1866년]] [[3월 26일]]에서 [[1873년]] [[11월 16일]]까지 생부 흥선대원군이 재차로 4차 [[섭정]]을 하였으며 [[1873년]] [[11월 16일]]에서 [[1873년]] [[12월 3일]]까지 영의정 [[이유원 (1814년)|이유원]](李裕元)이 잠시 5차 섭정 성향의 [[대리청정]]하였고 [[1873년]] [[12월 3일]]에서 [[1881년]] [[9월 28일]]까지 잠시 1차 친정하였으며 [[1881년]] [[9월 28일]]에서 [[1882년]] [[1월 13일]]까지 큰아버지인 영의정 [[흥인군|흥인군 이최응]]이 잠시 6차 성향의 대리청정하였고 [[1882년]] [[1월 13일]]에서 [[1882년]] [[8월 29일]]까지 2차 친정하였으며 [[1882년]] [[8월 29일]]에서 [[1883년]] [[6월 7일]]까지 [[영의정]] [[홍순목]]이 잠시 7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맡았고 [[1883년]] [[6월 7일]]에서 [[1884년]] [[5월 22일]]까지 이복 형인 병조판서 [[흥친왕|완흥군]]이 잠시 8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맡았으며 [[1884년]] [[5월 22일]]에서 [[1884년]] [[5월 31일]]까지 잠시 9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맡았고 [[1884년]] [[11월 30일]]에서 [[1885년]] [[1월 1일]]까지 잠시 10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맡았으며 [[1885년]] [[1월 1일]]에서 [[1894년]] [[6월 25일]]까지 3차 친정하였고 [[1894년]] [[6월 25일]]에서 [[1894년]] [[7월 19일]]까지 [[영의정]] [[김홍집 (1842년)|김홍집]]이 잠시 11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맡았고 [[1894년]] [[7월 19일]]에서 [[1894년]] [[7월 27일]]까지 내무아문 협판 겸 내무대신 직무대행 서리 [[이준용 (1870년)|영선군 이준]](永宣君 李埈)이 잠시 12차 성향의 대리청정을 하였고 [[1894년]] [[7월 27일]]에서 [[1895년]] [[6월 1일]]까지 4차 친정하였으며 [[1895년]] [[6월 1일]]에서 [[1895년]] [[7월 1일]]까지 내각 총리대신 겸 영의정 권한대행 [[박정양]](朴定陽)이 한 달 간 13차 대리청정하였고 [[1895년]] [[7월 1일]]에서 [[1895년]] [[12월 17일]]까지 5차 친정하였으며 [[1895년]] [[12월 17일]]에서 [[1896년]] [[2월 11일]]까지 총리대신 겸 영의정 권한대행 [[김홍집 (1842년)|김홍집]](金弘集)이 두 달 간 14차 대리청정하였고 [[1896년]] [[2월 11일]]에서 [[1901년]] [[12월 19일]]까지 6차 친정하였으며 [[1901년]] [[12월 19일]]에서 [[1902년]] [[1월 23일]]까지 의정대신 [[윤용선]](尹容善)이 15차 대리청정하였고 [[1902년]] [[1월 23일]]에서 [[1904년]] [[12월 28일]]까지 7차 친정하였으며 [[1904년]] [[12월 28일]]에서 [[1905년]] [[1월 15일]]까지 의정대신 [[이근명 (1840년)|이근명]](李根命)이 16차 대리청정하였고 [[1905년]] [[1월 15일]]에서 [[1907년]] [[1월 21일]]까지 8차 마지막 친정하였으며 [[1907년]] [[1월 21일]]에서 [[1907년]] [[7월 20일19일]]을 기하여 퇴위할 때까지 [[대한제국 순종|황태자 이척]](皇太子 李坧)이 마지막 17차 [[대리청정]]을 하였다.
 
== 생애 ==
367번째 줄:
 
=== 생애 후반 ===
고종은 [[1907년]]에 [[이준 (1859년)|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밀사를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파견하여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체결로 인한 외교권이 강제로 박탈된거에 대해 항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가고 통감은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는 구실로 고종을 압박하여 [[1907년]][[7월 20일19일]] [[고종 양위 사건|양위식]](고종의 강제 퇴위)으로 황권이 황태자 척에게 양위당하고 고종은 일본군에 의해 [[덕수궁]] 함녕전에 유폐되었다. 그러던 와중, 자신이 헤이그에 보냈던 특사 헐버트에게 비밀리에 자신이 상해의 덕화은행에 맡긴 예치금을 찾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하지만 고종의 내탕금은 일본에 의해 이미 사라지고 난 뒤었다. 그 이후 결국 일본의 위협속에서 살아가다가 [[1919년]] [[1월 21일|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식혜를 마시고 승하하셨다.
 
==== 일본의 침략과 강제 퇴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