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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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p of Korean language.png|섬네일|300px|한국어의 세계 분포를 나타낸 그림.]]
 
'''한국어'''(韓國語) 또는 '''한국말'''(韓國말), '''조선말'''(朝鮮말)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공용어]]로,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 또는 '''한국말'''이라고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말''',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에서는 '''조선어'''(朝鮮語)라고 부르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중앙아시아 한국어|고려말]]'''(高麗말)이라고 부른다.
 
[[19세기]] 중반 이후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혼란,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의 침략,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의 해외 [[이민]] 등의 요인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베트남]] 등 세계 여러 지역에 [[한민족]]이 이주하면서 이들 한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한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2016년 1월 초 기준]]으로 한국어 사용 인구는 약 7,720만 명으로 추산된다.<ref name="Ethnologue"/>
 
== '한국어'의 여러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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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계통에 대해서는 핀란드 언어학자 람스테드가 [[알타이어족]]설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어]], [[티벳어]], [[아이누어]], [[드라비다어족]]과의 동계설은 물론, [[인도유럽어족]]의 동계설까지 제기되었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우랄-알타이 계통설이 지지를 받았는데, 우랄-알타이어족이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으로 나뉘게 된 뒤에는 알타이 계통설이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그러나 한국알타이어족을 초중고이루는 정규교과서에서는주요 한국어를언어인 알타이어족으로튀르크어와 가르치고몽골어 사이의 유사관계가 많은 부분 어휘차용에 근거하는 등 알타이어족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유사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결정적으로 기초 어휘의 일치 및 음운대응규칙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립된 언어]] 내지는 [[한국어족]]으로 보고 있다.
 
=== 알타이어족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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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이 가지는 전형적인 특성 외에 다른 특성을 공유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어가 조기에 알타이조어에서 분리되었다는 가설을 성립하게 하였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임을 부정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 알타이 어족 가설 자체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정론인 한국어 알타이어족설을 반대하는 주장이다.
# 알타이 제어에는 기초 어휘인 신체 지칭이나 친족 명칭어가 유사한 것이 적다거의 없다.
# 기초 어휘로서 대명사 일부만이 유사하고, 수사가 거의 다르다.
# 음운대응의 규칙성이 정확하지 못하고, 믿을만한 것이 부족하다.
# 알타이 제어의 언어 구조는 매우 유사하지만, 차용어를 제외하면 공통된 요소가 매우 적다.
# 문법 요소의 일부 유사성으로는 알타이 제어의 관련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접촉을 했고, 서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결과, [[언어동조대|언어구조가 유사]]해졌고, 차용어로 인하여 공통요소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임을 부정하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음운대응의 규칙성의 부족이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알타이 제어와 한국어의 음운대응 관계가 적게 밝혀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모음의 대응은 매우 불규칙하다. 하지만 자음 중에서는 몇 가지 밝혀진 대응관계가 있다.<ref>이기문·이호권 『국어사』 방송통신대학출판부 2008 22쪽</ref>
 
한국인은 형질 인류 상으로는 몽골로이드이며몽골 인종이고, 언어상으로는 알타이어를 쓰고 있다. 대한민국의한국의 학교에서는 2006년 기준 한국어가 알타이 어족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ref name="histsb">{{서적 인용
 
|저자1=국사 편찬 위원회
|제목=고등학교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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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어휘]]는 크게 고유어 ("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로 분류된다. 고유어는 한국어의 기층을 형성하는 고유의 어휘로, 사용 빈도가 높은 [[일상어]]는 대부분 고유어에 속한다. 그러나 고유어의 일부는 매우 이른 시기에 들어온 [[상고 중국어]]에서 유래되어 고유어로 인식되는 어휘가 있고(붓-筆, 먹-墨), 후대에 [[한자어]]의 형태가 일그러지면서 본디 말과 다른 의미를 획득하여 고유어로 인식되는 어휘도 있다(사냥>山行, 짐승>衆生). 음운적으로 ㄹ 소리로 시작되는 토착어휘는 거의 없으며, 이는 [[알타이 제어]]의 음운론적 특징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자어는 고전 중국어에서 유래된 어휘군으로 중국과의 접촉에 따라 지속해서 한국어에 유입되었으나 한자어의 비율은 사전이나 자료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50%라고 하는- 설이70%까지로 있으나추산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는 일제강점기에 가능한 한 많은 낱말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우리말 70%가 한자말? 일제가 왜곡"|url=http://hani.co.kr/arti/culture/religion/376204.html|날짜=2009-09-11|확인날짜=2018-10-06|뉴스=[[한겨레]]}}</ref> 또한, 국어사전이 수록하는 한자어의 상당수는 한문 문장에만 용례가 있고, 한국어에서는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 단어들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이 2002년 발표한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를 보면 우리말의 낱말 사용 비율은 토박이말이 54%, 한자어 35%, 외래어가 2%였다.
 
이는 중국에서 받아들인 지 오래되어 외래어처럼 인식되지 않는 고전 한어(한문) 기원의 한자어와 한국에서 독자 조어된 한국제 한자어,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의 개념을 번역해낸 일본제 한자어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한자어는 본질에서는 외래어이지만, 한국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특수하고,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다른 외래어와 달리 별도 분류한다. 마치 [[영어]]에서 [[라틴어]], [[프랑스어]]를 거쳐 들어온 문화어휘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다.
 
외래어라 하면 일반적으로 한자외의중국어 이외의 외국어에서 받아들인 어휘를 가리킨다. 근대 이전에는 불경을 통하여 간접 차용된 [[산스크리트어]](한자어 형태로 들어왔기 때문에 한자어로 분류되기도 함)를 비롯하여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등에서 소수의 [[차용어]]가 들어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등 인도유럽어족 어휘가 주로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다. 이때 '아르바이트(Arbeit)'와 같이 원어의 의미와 다르게 쓰이게 된 말도 있다. 현대에는 영어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영어로부터의 많은 차용어들이 쓰이고 있다.
 
== 문자 ==
{{본문|한글|이두|향찰|구결}}
한반도에서 처음 사용된 문자체계는 한자이다. 한문과 한자 문화가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한사군 시절을 전후하여 이미 한반도에서 한자, 한문이 유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문 유입 이후, 고유명사 표기 등 한국어 표기의 필요성이 대두하였으며,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어순이 한문 어순이 아닌 한국어 어순에 따라 배열되어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여러 고안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임신서기석에 사용된 변칙한문체를 서기체(誓記體) 또는 의국체(擬國體)라고 한다.
 
단음절어이며 [[고립어 (언어유형학)|고립어]]인 [[중국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다음절어이면서 [[교착어]]인 한국어의 표기에 적합하지 않아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하는 방법 중에서 [[이두]], [[구결]] 있었으며제한적인 쓰임새 외에는 일반화되지 못했고, [[향찰]]은 소멸하였다. 한글이지배계급은 만들어지기한자를 이용하여 전에는구어인 한국어를 표기하기보다는 문어체의 한문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구어(한국어)와 문어(한문)의 이중체계가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현재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여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1446년]]에 반포한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대한 설이 여러 가지 있었으나, 1940년에 《세종어제훈민정음》이 발견되면서 발성 기관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반포 서문에서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다"(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라고 적고 있다.
 
[[최만리]] 등은 [[1444년]](세종 26년) 2월에 한글 창제 반대 상소에서 "신 등이 엎드려 보건대,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다."(臣等伏覩諺文制作, 至爲神妙, 創物運智, 夐出千古.)라고 하며, [[세종대왕]]이 [[한글]]을 직접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세종실록]] 26년 2월 20일) 같은 상소에서는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된다."(字形雖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고 했는데, 이는 [[오랑캐]]([[몽골]]·[[여진]]·[[일본]] 등)처럼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고 비판할 [[중화주의]]자들을 의식해 '언문은 옛글자([[한자]]의 옛 서체)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에 대해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음절]]을 구성하는 한글의 표기방식이 표의문자인 [[한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비난한 내용으로, 한글 이전에는 [[조선]]에 한글과 같은 문자가 없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글을 이후 조선에서 소설이나 편지등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국한문혼용]])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이 공식문자이고, 일부 한자어는 한자를 괄호에 넣어 병기(竝記)하기도 하지만 한자의 사용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구 소련 지역에서는 한자를 거의 쓰지 않고 가급적 순한글로 한국어를 표기한다.
 
한글을한자는 이후훈민정음 조선에서창제 소설이나이후에도 편지등에서도공문서에 많이사용하는 사용되었다.유일한 문자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공문서에 한글이 쓰이기 시작하였다.([[국한문혼용]])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이 공식문자이고, 일부 한자어는 한자를 괄호에 넣어 병기(竝記)하기도 하지만 한자의 사용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구 소련 지역에서는 한자를 거의 쓰지 않고 가급적 순한글로 한국어를 표기한다.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여러 소수 민족 언어를 대상으로 한 로마자 표기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안을 승인했지만, 실제 로마자 표기안이 마련되어 생활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어 문자생활에서 로마자로 한글·한자를 대체하려던 방안으로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고유명사의 표기에 쓰는 현재의 로마자 표기 규범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다만, 현대 한국어에서는 로마자 [[두문자어]] 표기와 일부 고유 명사 표기에 로마자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