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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동안 [[1926년]]부터 [[1941년]]까지 친정을 하였고 [[1944년]]까지 [[도조 히데키]] 총리대신이 [[권력|실권]]을 잡았으며 이듬해 [[1945년]]까지 다시 1년간 친정을 하였고 이듬해 [[1946년]]까지 [[더글러스 맥아더]]가 1년간 실권을 잡았으며 [[1952년]]까지 [[윌리엄 시볼드]] 주일 미국 대사가 6년간 실권을 잡았다가 [[1989년]]에 붕어할 때까지 또다시 친정하였다.
 
히로히토가 덴노 자리에 오르던 1920년대 전후반, 일본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극심한 불황 상태에 빠져있었고 정치적으로는 [[통제파]], [[황도파]], [[사회주의]]·[[공산주의]]·[[아나키즘]] 등의 여러 사상이 대립하였다. 1930년대 초, 수차례의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들의 비호 아래 쇼와 천황과 그 측근들은 일본 군부의 [[중국]] 침략, [[동남아시아]] 침략을 묵인했다.<ref name="빅스_33">빅스, 33쪽.</ref> 또,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장군과 제독의 임명과 승진 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일본 제국의 대외 침략 전쟁을 도왔다.<ref name="빅스_33"/>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자, 쇼와 천황은 일본으로 진주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인사들과 유착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범 기소와 황위 박탈은 면했지만 연합군은 [[일본국 헌법|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완성하면서 쇼와 천황, 그리고 앞으로의 왕들의천황들의 정치적 실권을 빼앗았다.<ref>빅스, 21쪽.</ref> 정치적 실권을 잃은 쇼와 천황은 [[해양생물학]] 연구에 매진하는 등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쇼와 천황은 죽은 뒤에도 일본 제국이 자행한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전쟁과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즉위 전의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