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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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에 취한 프로이센 군부는 빈으로 진격을 주장했고, [[빌헬름 1세]]도 이것을 바랐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에 억눌려왔던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빈에서 승리의 [[행진|퍼레이드]]를 벌이길 원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생각은 달랐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에 굴욕감을 주어서는 안되며, 나중에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할 때 최소한 중립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의 자존심을 지켜주어 복수심을 갖지 않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황태자의 도움과 사표 위협으로 이를 관철시킨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대프랑스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역할을 미리 내다본 것이다.
 
== 의의결과 ==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미친 결과는 대단히 컸다. [[독일 연방]]의 두 강국이었던 양국 간의 전쟁이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향후 독일의 제패권은 프로이센에게 넘어갔다. 이는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대결 구도가 완전히 종결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독일 내에서 영향권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독일 지역 내에 갖고 있던 영토도 대부분 빼앗겼다. 프로이센은 [[하노버 왕국]], [[헤센카셀헤센 방백국|헤센카셀대공국]], 전체와[[작센 왕국]], [[프랑크푸르트]],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 [[나사우 공작령]]의 일부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탈리아 왕국]]은 조약대로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로부터 얻었다. 신생국인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도 프로이센의 편에 서서 싸웠는데 그 이유는 1866년 즉위한 [[카롤 1세]]가 프로이센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독일 연방 퇴출으로 인해 독일 연방은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이를 대신해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하는 [[북독일 연방]]이 새로 설립되었다. [[바이에른 왕국|바이에른 왕국]]을 비롯한 남부 독일 지역은 여전히 프로이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