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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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 반미주의적인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학생운동권 사이에서 [[민족해방]]론이 대두되었다. 그에 의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남북협상을 통해 태어날 정부를 좌절시키고 [[미국]]이 수립한 꼭두각시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6.25 전쟁]]을 [[미국]]이 고의로 남침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선우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고, [[6.25 전쟁]]은 [[북한]]의 침략임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강력한 [[반공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였고 이로 인하여 늘 찬반의 격렬한 논쟁과 극단적인 찬사와 극단적인 비판이 공존하는 요인이 되었다.
 
평소 지병인 [[고혈압]] 등을 앓았으나 만년에도 끊임없는 칼럼, 기고 활동과 논설, 강연 활동 등에 나섰다. [[1986년]] [[2월 28일]] 조선일보사를 정년퇴임하고, 그해 [[6월]] 자신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드는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부산직할시]] 초량동으로 내려갔다. [[6월 12일]] 한국방송공사(KBS) 6·25특집극 〈살아살아있는 있는 전장전장수첩〉 녹화촬영 중<ref>[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2s0318a 선우휘:Daum]</ref> 그날 오전 9시경 과로와 고혈압에 의한 뇌일혈로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한 숙소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향년 64세였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