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붕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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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8월 쿠데타}}
[[파일:Image0 ST.jpg|섬네일|right|1991년 8월 쿠데타 도중 [[붉은 광장]]에 서 있는 전차.]]
이러한 일련의 [[분리주의]] 세력이 커지면서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덜 중앙화한중앙집중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1991년 8월 20일에20일 러시아 SFSR은 소련을 대통령, 국방, 외교정책은외교정책만 연방에 맡긴 주권국들을주권국들의 연합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신연방조약]]에 서명할 예정이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81300099205010 |제목 = 러시아 영내 모든기업 "共和國서 관할"공포 |출판사 = 매일경제 |날짜 = 1991년 8월 13일 |확인날짜 = 2018년 2월 15일}}</ref> 이 안은 소련내 공동경제로 큰 경제적 혜택을 보고 있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강력하게 지지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산당이 계속 지배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급진적인 개혁주의자들은 소련이 점점 여러 독립국으로 분열되고 있다고 해도 시장경제로 급속히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의 깊은 통제에서 지역 정부와 공화국들이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것 외에도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으로써 옐친도 독립을 요구했다. 신연방조약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반해 소련군과 소련 공산당 내에서 여전히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보수주의자, '애국자', 소련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소비에트 국가와 중앙집중화된 권력구조를 건드리는 것에 격렬하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