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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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학 ====
편입과정에서 [[이응준 (군인)|이응준]], [[김석원]]과 함께 국비 유학생으로 뽑혔는데, 이는 황족인 [[영친왕]]이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유학 동반자로 선발된 것이다. 그밖에 홍사익의 동기로는 [[이청천지청천]], [[신태영 (1891년)|신태영]], 소설가 [[염상섭]]의 형 [[염창섭 (1890년)|염창섭]] 등이 있었다. 한편 그는 학비 조달에 애로사항을 겪었고, [[송건호]]는 그가 직접 일을 해서 학비를 조달했다 한다. [[송건호]]에 의하면 그는 일하며 배우는 것으로 일상생활을 삼았다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와 노동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였다. 그러나 [[1909년]]부터 그는 [[기호흥학회]]에 매달 1환(一圜)씩의 성금을 기부하였다.
 
그의 학교 성적은 같은 교육구대에서는 상위권이었으며, 학업성적은 전교생 20등 안팎이었다. 육사 동급생 중 홍사익은 석차가 22등이었고, [[이응준]]이 다음으로 32등이었다.<ref>김윤식, 《20세기 한국작가론》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53페이지</ref> 일본 육사 재학 당시 그는 동아리 활동으로, 주로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는 작문을 잘 하였는데, 그의 글재주가 뛰어나다 하여 그가 지은 작문과 [[시 (문학)|시]]는 생도자격으로 일본 천황 앞에서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그의 동기들은 그에게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