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192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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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시켰다. 나비기금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함께 이뤄질 법적 배상금 전액을, 전 세계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폭력에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는 기금이다.<ref>이은경. [http://www.womennews.co.kr/news/59794#.Uhh9qnmwfIU “우리 고통 알아주는 이들 많으니 행복해요”]. 여성신문. 2013년 8월 7일.</ref> <ref>김보경.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428930 위안부 기림일 기념 수요집회…9개국서 국제연대]. 연합뉴스. 2013년 8월 14일.</ref> <ref>박현경. [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93202 김복동 할머니, LA 일본총영사관 시위]. 라디오코리아. 2013년 7월 25일.</ref> <ref>이희정.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1921022876070.htm 세계 1억인 서명 운동 나선 정대협 윤미향 대표] {{웨이백|url=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1921022876070.htm# |date=20130625023626 }}. 한국일보. 2013년 4월 19일.</ref> <ref>김동선·김민영·김보경·주상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77&aid=0003311154 "정부가 한 게 뭐 있소, 일본 눈치나 봤지"]. 아시아경제. 기사입력 2014년 8월 14일. 최종수정 2014년 8월 18일.</ref>
 
== '''생애'''{{생애|생애=김복동 할머니 생애}}==
암 투병 중이던 김 할머니는 28일 밤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에서 숨을 거뒀다. 경남 양산 출신인 김 할머니는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나라 안팎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해온 평화운동가였다. 2015년에는 분쟁 지역 피해아동 지원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 나비기금은 이 돈으로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 할머니는 같은 해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익사단법인 정은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으며 평화와 통일의 신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