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시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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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불위와의 분쟁 ==
 
새로 진나라 왕이 된 시황제는 친정을 할 수 있는 나이는나이가 아니었기에, 아버지 때에 상방이 된 여불위가여불위와 조태후가 섭정이 되어 국사를 돌보았다. 여불위는 마음대로 국사를 휘둘렀으며, 심지어 시황제의 어머니 조태후와 각별한 사이였다. 이에 여불위는 [[노애]]라는 자신의 수하를 환관처럼 꾸며 조씨의 처소로 보냈고, 조씨는 노애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에 조씨는 노애와 함께 수도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거처하였다. 하지만, [[기원전 238년]]에 시황제가 성인식으로 잠시 함양을 비우자, 노애가 반란을 일으켰다. 소식을 들은 시황제는 곧바로 군사를 파견하여 노애를 [[능지처참]]에 처하고 어머니 조씨를 감금하였다. 노애와 조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2명도 살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