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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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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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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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十二六事件) 또는 '''박정희 암살 사건'''(朴正煕暗殺事件), '''박정희 사살 사건'''(朴正煕射殺事件), '''박정희 총살 사건'''(朴正煕銃殺事件), '''궁정동 사건'''(宮井洞事件)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 (1934년)|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총살한 사건이다. '''십이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염동진]]의 아지트가 있던 자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곧 국군 서울 지구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김재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독재자 박정희를 처단하였다고는 하였으나, 권력 암투 과정에서 김재규가 [[차지철]]에 밀리는 상황이었고 이에 김재규가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살인 사건을 7년간 준비해왔다는 설이 있고<ref name=autogenerated2>[[이제는 말할 수 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cantell/vod/index.html?kind=text&progCode=1000459100078100000&pagesize=15&pagenum=2&cornerFlag=0&ContentTypeID=1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78회 2004년 04월 4일 방송</ref>,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추진과 [[박동선 (1935년)|박동선]]의 [[코리아 게이트 사건]] 등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 정부가 김재규를 통해 박정희의 암살을 은밀히 조장했다는 설이 있다.
 
== 사건의 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