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9대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78번째 줄:
대의원 정수는 2,583명이나,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사퇴하여 대통령 선거 당시 재적 대의원 수는 2,581명, 당선에 필요한 표수는 1,291표였다. 단일후보인 [[박정희]]가 2,581명의 대의원 중에 2,578명이 출석한 가운데 2,57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훗날 박승국 당시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제2선거구 대의원은 훗날 당시 1표의 무효표는 자신의 표였다고 밝혔다밝히며, 이름을 적는 방식의 100% 찬성 투표식 선거에 반발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ref>{{웹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2061219049170|제목=김일 박치기에 온 국민 시름 잊고… '체육관 대통령' 선출 민주주의 시름 겪어|날짜=2015-02-06|언어=ko|확인날짜=2019-03-16}}</ref>
 
{{인용문|"1978년 ‘유신(維新)이 구국적 선택인가’를 두고 여야가 대립을 보일 때였지요. 그런데 대통령 선거 투표방법을 보니 대의원이 후보자 이름을 투표지에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이의를 제기했더니 소문이 퍼져 어느 날 도지사가 만나자고 해요. 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100% 찬성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를 하는 후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개의치 않고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며 협조해달라’고 하더군요. 기관원들이 불이익을 주거나 해코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용기였던 것 같아요.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대의원 2천583명 중 2천578명이 투표해 무효표 1표를 제외한 2천577표로 당선되었습니다. 유일한 무효표가 경북지역 투표함에서 나오자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무효표의 주인공은 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