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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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가 희생되어도 연쇄적 검거와 조직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조직의 종적 연계를 방지하며,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민족적 양심가를 망라해 공장, 회사, 학교, 대중단체에 세포조직을 두기로 결정하였다. 건국동맹의 목적은 투쟁과 건설이라는 두 가지 점이었다. 첫째로 일제 패망 가속화, 둘째로 해방을 준비하기 위해 주체세력을 조직적으로 준비, 편성하는 작업이었다. 즉 민족해방투쟁과 건국준비사업을 위한 민족통일전선 결성이었다.
 
[[1943년]]~[[1944년]] 무렵 여운형은 조직의 명칭으로 '조선해방연맹','조선민족해방연맹','인민전선','인민위원회' 등을 구상하다가 건국동맹이라는 명칭을 확정하였다. 조선민족해방연맹, 조선해방연맹이라는 명칭은 민족해방이라는 과제에 중점을 두었다. 이 명칭은 1930년대 후반~40년대 초반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사용하던 조직명을 염두에 둔 것이며, [[1942년]] [[옌안]]에서 조직된 [[조선의용군|화북조선독립동맹]]과 일정한 통일성을 의식한 것이었다. 인민전선,인민위원회의 경우는 조직이 각계각층을 망라한 통일전선적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강조점이 두어졌다. 인민전선의 구상은 [[1935년]] [[코민테른]] 제7차대회에서 결성된 '반파쇼인민전선','반제민족통일전선' 강조의 흐름과 일정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인민위원회의 경우에는 정권형태 혹은 국가건설의 방향에 초점을 두었다. 인민전선이란 명칭은 반(反)파쇼,반제(反帝)세력을 투쟁전선으로 묶어낸다는 의미가 강했고, 인민위원회는 반면에 항일투쟁에 대한 강조를 담아낼 수 없었다.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명칭은 민족해방투쟁보다는 해방 후 '건국준비사업'에 보다 강조점을 둔 것이었다.
 
==강령 및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