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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吳起, ? ~ [[기원전 381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며,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본래 [[위 (춘추 시대)|위나라]](衛) 출신으로, [[증삼증자 (사상가)|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어머니의 장례에 참여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파문당한 후에는 병법을 공부하여 장군이 되었다. 이후 [[노나라]](魯) · [[위 (전국 시대)|위나라]](魏) · [[초 (춘추전국)|초나라]](楚)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관직에 올라 전공을 거두어 명성을 떨쳤고, 최후에는 초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저작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이 전해진다.
 
== 생애 ==
전국 7웅(七雄) 가운데 가장 먼저 발전한 나라는 위(魏)였다. 위의 문후(文侯)는 [[이회 (법가)|이회]](李悝)와 서문표(西文豹)를 등용하여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는 한편, 오기(吳起)·악양(樂羊) 등의 장군을 기용하여 영토를 확대했다.
 
=== 초기생애 ===
위나라에서 그는 많은 큰 전투를 지휘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재상으로 임명된 전문(田文)과의 공로를 비교한 문답이 [[사기 (역사서)|사기]] '손자오기 열전'에 나온다.
오기는 본래 [[위 (춘추 전국)|위나라]](衛) 사람으로, 본래 젊은 시절에는 천금(千金)에 달하는 가산을 저축해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는 돈으로 관직을 얻으려 하였으나 가산만 탕진한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오기를 비웃자, 오기는 자신을 비방한 30여 명의 사람을 죽이고는 도성의 동문(東門)으로 빠져나가 달아났다. 이때 오기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팔을 깨물어 맹세하기를, "저 오기는 경상(卿相)이 되기 전까지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 말하였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후에 그는 초(楚)나라로 가서 도왕(悼王)에 의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초나라에서 봉건 혁명을 이끌어 초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혁명이 구귀족을 노하게 하고 초왕의 사후 피살되었다. 그는 초나라의 법을 이용해 죽을때도 화살이 죽은 초나라 왕의 시신에 맞게 하여 50여명 이상의 초나라 귀족의 일족들을 멸하게 만들었다.
 
고향을 등지고 달아난 오기는 대학자였던 [[증자 (사상가)|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오기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를 지내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증자의 눈밖에 나서 그와의 관계 또한 끝나고 말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 노나라에서 ===
증자와의 관계가 끊어진 후, 오기는 [[노 (춘추 전국)|노나라]](魯)로 와서 병법(兵法)을 공부하고는 [[노 목공]]을 섬기게 되었다. 이때에 [[제 (춘추 전국)|제나라]](齊)가 노나라를 공격하였는데,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마침 그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었기에 그를 의심하여 섣불리 기용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제나라를 돕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이에 노나라에서 마침내 오기를 장군으로 삼았는데, 오기는 군대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이를 크게 격파하였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그러나 노나라의 한 사람이 노나라 군주에게 오기의 과거행적을 폭로하며 그의 심성이 잔인하다고 비방하였으며, 또한 위나라의 죄인인 오기를 등용하는 것은 동맹국인 노나라와 위나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노나라 군주는 오기를 의심하고는 그를 쫓아내 버렸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 위나라에서 ===
 
==== 위 문후 시대 ====
노나라 군주에게 버림받은 오기는 당시 [[위 (전국)|위나라]](魏)의 군주였던 [[위 문후]]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섬기고자 하였다. 위 문후가 신하인 이극(李克)에게 오기가 어떤 사람인지 묻자, 이극은 오기에 대하여 "비록 욕심이 많고 여색을 밝히지만 용병에 있어서는 [[사마양저]]도 따라잡을 수 없다."라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위 문후는 오기를 등용하여 장군으로 삼았다. 장군이 된 오기는 [[진 (영성)|진나라]](秦)를 공격하여 5개 성을 빼앗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이후 오기가 유생(儒生)의 차림새를 갖추고 병법을 논하고자 위 문후를 배알하였는데, 위 문후는 일부러 오기의 앞에서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라 말하며 속내를 감추었다. 그러나 오기는 이미 위 문후가 몰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그 앞에서 병법을 논하였다. 그의 언변에 감탄한 위 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여 부인으로 하여금 오기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다.<ref>《오자병법》 1편 도국</ref>
 
위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청렴하며 공정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는 그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삼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 ; 《오자병볍》 1편 도국</ref> 이후 오기는 제후국들과 76회에 달하는 싸움을 치러서 64회의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도 모두 무승부로 끝을 냈다. 오기의 공로로 인하여 위나라는 사방으로 1천 리에 달하는 영토를 얻었다.<ref>《오자병법》 1편 도국</ref>
 
==== 위 무후 시대 ====
[[기원전 396년]], 위 문후가 죽고 그 아들인 [[위 무후]]가 즉위하였다. 어느날은 무후가 서하에서 배를 타고 노닐다가 그 견고한 산의 형세를 살펴보고는 "나라의 보배"라며 감탄하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오기는 예로부터 많은 군주들이 견고한 지형 만을 믿다가 패망하였으니, 나라의 운명은 지형이 아닌 군주의 덕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며 위 무후에게 간언을 올렸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 ; 《전국책》 권22 위책1 〈위무후여제대부어서하〉</ref>
 
이후 위나라에서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삼았는데, 당시 서하태수로 대단한 명성을 날리던 오기는 자신이 재상이 되지 못한 일을 언짢게 여겼다. 오기는 전문을 찾아가 자신이 전문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문은 자신의 공로와 능력이 비록 오기 만큼은 못하지만, 왕의 나이가 어려서 대신과 백성들이 나라를 받들지 않는 이 때에는 오기보다 자신이 재상이 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반박하여 그를 납득시켰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전문이 죽은 후에 위나라의 재상이 된 공숙(公叔)은 오기의 공로를 시기하였다. 그래서 공숙은 부하들의 의견에 따라, 일부러 위 무후를 찾아가서 오기가 위나라보다 더 강한 진나라에 붙을까 걱정이니, 그에게 위나라의 공주와 혼인하도록 하여서 그 속마음을 떠볼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는 집으로 달아와 오기를 초대하고는 일부러 위나라 공주를 박대하여 자신을 함부로 대하게 하였다. 그 광경을 본 오기는 위나라 공주가 재상을 박대한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고, 위 무후가 공주와 혼인할 것을 제안하자 이를 거절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위 무후는 오기를 의심하여 더 이상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 초나라에서 ===
오기는 위 무후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하다가 결국은 [[초 (춘추 전국)|초나라]](楚)로 떠났다. [[초 도왕]]은 오기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오기가 초나라에 오자 곧바로 그를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았다. 초나라의 재상이 된 오기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하여 법을 명확히 바꾸고 쓸모없는 관직을 폐지하였으며, 초나라 왕실과 거리가 먼 공족들의 특권을 폐지하여 그 예산으로 군대를 키웠다. 이렇게 하여 오기는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였고, 북쪽으로는 [[진 (규성)|진나라]](陳) · [[채 (춘추)|채나라]](蔡)를 병합하여 [[조 (전국)|조나라]](趙) · [[한 (전국)|한나라]](韓) · [[위 (전국)|위나라]](魏) 등의 삼진(三晉)을 격퇴했으며, 서쪽으로는 [[진 (영성)|진나라]](秦)를 정벌하여 제후들의 두려움을 샀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 죽음 ===
[[기원전 381년]]에 초 도왕이 죽자, 과거에 오기의 개혁정책으로 특권을 잃은 초나라 종실의 귀족과 대신들이 난을 일으켜 오기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달아나서 초 도왕의 시신 위에 엎어졌는데, 이때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들이 오기에게 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날리다가 초 도왕의 시신까지 활로 맞추고 말았다. 도왕의 장례를 치르고 즉위한 [[초 숙왕]]은 왕의 시신을 화살로 쏜 자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였으니, 이 사건에 연루되어 멸족당한 집안이 70여 곳이나 되었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