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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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출처 필요 문단|날짜=2013-09-26}}
[[진골]]왕통의 세 번째 왕이었으나 그는 모계로는 실제 [[성골]]에 해당된다. 그는 부계로는 [[진흥왕]]-[[진지왕]]-[[문흥왕]](추존)-[[무열왕]]-[[문무왕]]으로 이어졌으며, 어머니 [[자의왕후]] 김씨는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 태어난 구륜의 아들 김선품의 장녀(長女)이다. [[문무왕]]과 자의왕후는 7촌 고모-조카간이 된다. 따라서 그는 부계, 모계 모두 왕족인 성골이었다.
한편 역사서에는 신문왕이 [[문무왕]]의 장남인지 차남인지 의견이 분분하는데 먼저 [[삼국사기]]에서는 신문왕이 문무왕의 장남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화랑세기]]에서는 [[문무왕]]의 차남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형으로 추정되는 [[소명태자]]가 상세하게 기록되었는데 문무왕 즉위 시 장남인 [[소명태자]]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665년에 사망한 바람에 차남인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되었다고 기록되었다.
 
== 각주 ==